"우리는 어수룩한 사람을 얕잡아 보고 '저 사람은 내 밥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워 우리 모두에게 '밥'이 되셨습니다…진정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타인에게 밥이 되어 주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

지난 2월 선종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이렇게 강조했다. 남을 '밥'으로 삼지 말고 내가 '밥'이 되라는 것.밥은 '먹을 것'만은 아니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지려는 마음,나눌 것이 없다면 함께 울어 주는 것만으로도 밥이 될 수 있다. 나눔의 미덕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보다 더한 나눔이 있을까.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에는 사랑,행복,지혜로운 삶,참다운 인간,사회 · 국가 · 민족,세상에 봉사하는 교회,기도와 내면성찰 등에 대해 김 추기경이 들려 주는 81편의 말씀이 실려 있다. '혜화동 할아버지'의 미공개 사진과 고찬근 신부가 쓴 병상일기 전문도 수록했다.

"'나는 왜 해가 바뀌어도 변화가 없을까?' 한 해를 마감하거나 새해를 시작할 즈음이면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먼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나'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난 1년간 여전히 나 중심으로 살아왔고,나의 욕심에 따라서 나의 안위만을 찾아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남을 사랑할 줄 몰랐고,화해할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

김 추기경은 "참사랑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남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아 함께 괴로워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참사랑은 상대방의 기쁨은 물론 서러움,번민,고통까지 함께 나누는 것,그 사람의 잘못이나 단점까지 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그의 마음 속 어둠까지 받아들이고 끝내는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인간적인 고뇌도 엿보인다. 책 첫머리에 공개한 친필 원고에서 김 추기경은 "하느님,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사실 보다시피 미약합니다. 덕도 없고 믿음도 약합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신뢰,근본적 의탁의 마음만은 지켜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또 '부끄러운 고백'이라는 글에서 "나는 원래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결단의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는 김 추기경에 관한 62가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김 추기경의 신앙과 삶,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사회적 관심과 실천,소탈하고 솔직했던 일상의 모습이 겨울 추위를 녹일 만큼 따뜻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