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국회의 예산안 처리가 연말을 넘길 경우에 대비해 "준(準)예산 집행 등 관련 대책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준예산 편성이 헌정 이래 처음으로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용걸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부는 만약에 대비해 준예산 편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상태"라며 "새해 1월1일 국무회의를 거쳐 곧바로 집행될 수 있도록 차질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하지만 "준예산은 국가비상 시 전년도 예산에 준해 최소한의 경비로 집행하는 제도인 만큼 정부 기관의 유지나 운영 외에는 예산을 집행할 수가 없다"며 "서민생활 지원이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가 불가능해져 정상적인 국가기능이 마비된다"고 우려했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당장 빚어지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민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다는 것이다. 특히 동절기에 더 취약한 노인시설 2081개소와 장애인시설 610개소,부랑인시설 51개소 등에 대한 지원은 끊기게 된다.

정부가 경제회복을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자리 사업에도 차질이 생긴다. 희망근로사업 10만명,청년 일자리 8만명,노인 · 장애인 일자리 18만명,가사 · 간병도우미 등 사회적 일자리 14만명 등 내년 상반기 추진예정인 60만명 공공일자리 제공이 일시 중단된다. 이에 따라 내년 연초 고용대란이 우려된다.

신종플루 확산에 대비한 항바이러스제 추가비축,급성 전염병 의심환자,사이버테러 예방대책 추진 등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긴급한 정책도 시행할 수 없게 된다. 내년 1학기부터 도입할 예정인 대학생 대상 '취업후 학자금상환제도'(107만명 대상)도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학자금 대출을 기다리는 대학생 중 상당수가 내년 1학기 등록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저소득층 및 근로자를 위한 서민주택 구입자금이나 전세자금 지원도 차질이 빚어진다. 특히 전제자금 대출을 계획한 상태에서 이미 사전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의 경우 심각한 혼란과 분쟁을 초래할 개연성도 크다. 정부는 19만가구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사업비 지원이 끊겨 진행 중인 대규모 도로나 광역철도 건설 공사 등이 지연되면서 건설경기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중앙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또 공무원 월급 지급도 미뤄질 수도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서민에 대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공무원 보수 지급 유보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종태/박신영 기자 jtchung@hankyung.com


◆준예산=국회가 연말까지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할 경우 전년도 지출에 근거해 예산을 집행토록 한 제도.1960년 4 · 19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3차 개헌으로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면서 도입됐다. 국가비상사태로 국가기능이 완전히 망가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비상조치로 만들어진 제도였다. 하지만 집행된 사례는 없다. 준예산은 헌법 54조 3항에 따라 집행 범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 · 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 세 가지로 한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