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화 속 설문대할망은 한라산과 일출봉에 다리를 걸치고 우도를 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고 합니다. 올렛길을 걸으면서 설문대할망의 전설을 떠올려 봅니다. 오름 자락으로 펼쳐진 밭과 돌담들이 거대한 조각보 같습니다. 저 풍경을 보면서 나는 설문대할망의 전설 하나를 만들어 봅니다. 저 밭은 설문대할망이 바느질한 조각보라고…'

사진작가 이해선씨의 《제주 올레》에 나오는 구절이다. 20~21쪽에 펼쳐진 오름자락의 밭과 돌담이 조각보처럼 그윽한데,그 사진 위로 맛깔스런 글이 자분자분 흘러간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라산에 동의를 구합니다. 올망졸망 오름들을 자식처럼 거느린 한라산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

그가 한라산에 동의를 구하는 것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듬고 있는 어미에게 고마워하는 의미도 있지만 '올렛길 내내 저 산을 보면서 걸어야 할 터이니' 정겹게 눈인사라도 건네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글에서는 속 깊은 성찰의 맛과 정성스러운 바느질의 맵시가 함께 묻어난다.

오조리 '신춘자할망민박'에서 아침을 먹고 올렛길로 나서다가 집에 둔 짐에 신경이 쓰여 "문은 당연히 잠그겠죠?" 하자 할망이 빙그레 웃으며 집 입구를 가리키는 대목에도 눈길이 오래 머문다. "대문도 없는데 어떻게 도둑이 들어오겠나. "

이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썼다. '고승(高僧)과 나누는 선문답 같습니다. 그녀의 말은 그날 올렛길 수행자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글뿐만 아니라 사진도 멋지다. 그는 올레 코스 안내와 주변 숙박,음식점 정보까지 꼼꼼하게 알려 준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판형이어서 올렛길을 걸을 때 갖고 다니기 좋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