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처방은 그렇다. 정부가 본격적인 출산 장려에 돌입한 건 2004년부터.1960년 6명이던 합계출산율이 2002년 1.17로 세계 최하위 수준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각종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뒤늦은 대응을 비웃듯 2005년엔 1.08까지 급락했다.

2007년 '황금돼지해 신화' 덕에 잠시 1.25로 올랐지만 2008년 다시 1.19로 주저앉았고 올해는 이보다 더 낮아질 전망이다. 9월까지 태어난 아기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이상 적다고 하는 까닭이다. 이대로 가면 1.0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하기 힘든 실정이다.

급기야 정부에서 아파트 우선분양 자격을 세 자녀 가구에서 두 자녀 가구로 낮추는 등의 추가 대책은 물론 셋 이상 다자녀 가구엔 대학 입학시 특혜를 주거나 부모의 정년 연장을 검토한다는 방안까지 내놨다. 이 같은 방안들이 실제 시행될지,시행된다 해도 과연 먹힐지는 미지수다.

여성에게'결혼은 선택,취업은 필수'고 혼자 벌어선 내집 장만은 고사하고 생활조차 어렵다는데도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출산과 양육을 직장생활의 걸림돌로 여기는 분위기 또한 여전한 탓이다. 직장인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야근은 물론 잦은 회식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니 출산은커녕 결혼도 힘들다는 마당이다.

아이를 낳자면 여성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 성공을 위해선 남녀 모두 퇴근시간 따윈 잊어야 한다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출산율은 높아질 수 없다. 실제 맞벌이가 외벌이보다 아이를 적게 낳고 중산층의 출산율이 가장 낮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을까. 여성부가 2010년 정책 목표 중 하나로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사회'를 잡고 구체적 실천방안으로'퍼플 잡(purple job)'확산을 내세웠다. 퍼플 잡이란 여건에 따라 일하는 시간과 형태를 조절하되 고용과 승진 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일자리를 뜻한다.

이른바 유연(탄력)근무제로 육아기간 동안 재택 혹은 시간제나 요일제 근무를 선택할 경우 보수만 줄어들 뿐 다른 차별은 없다는 점에서 계약직이나 임시직과는 구분된다. 출산이 제아무리 국가적 과제라 해도 아이를 낳는 건 여성이다. 퍼플 잡은 잘만 활용하면 출산율 제고는 물론 기업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애써 키운 인력을 중도에 잃는 건 기업으로서도 낭비일 게 분명할 테니.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