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에티켓과 양심의 스포츠라고 했던가. 양심적인 행동으로 주위의 칭찬을 받은 한 선수가 1년 동안 와신상담 끝에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주인공은 미국PGA투어프로 J P 헤이스(44 · 미국)다.

헤이스는 골프팬들에게 낯선 선수는 아니다. 프로골퍼로 드물게 대학을 졸업(텍사스 엘파소대 마케팅 전공)한 그는 1992년 미PGA투어에 들어와 2승을 거뒀으며 가끔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퀄리파잉토너먼트(Q스쿨)다.

헤이스는 2008년 미국PGA투어 성적(상금랭킹 165위)이 신통치 않아 그해 말 Q스쿨에 응시했다. Q스쿨도중 호텔에서 가만히 보니 자신이 대회에서 썼던 볼이 미국골프협회(USGA)가 규정한 '플레이 적격 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실은 자신만 아는 것이었다. 자신만 눈감고 그 이튿날 적격 볼을 가지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튿날 경기위원한테 가 "내가 어제 비공인구를 썼다"고 고백했다. 그에게는 '실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Q스쿨에서 실격은 '1년 기다림'을 의미한다. 투어 카드(시드)가 없기 때문에 2부(내션와이드)투어에 나가거나,월요 예선을 통해 대기 신분으로 투어 대회에 간간이 얼굴을 내밀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눈앞의 '실리'보다 자신의 '양심'을 따른 것.

그 같은 사실이 USA투데이 보도로 외부에 알려지자 그에게는 '올해의 스포츠맨''양심적인 선수'라는 훈장이 따라붙었다. 비록 투어 카드는 없지만,대회 타이틀스폰서 측에서 그의 양심을 높이 사 초청케이스로 출전토록 했다. 그런 대회가 5개나 됐고,그는 올해 투어 카드 없이도 15개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헤이스는 올시즌 벌어들인 상금이 약 30만달러(랭킹 172위)로 내년 투어카드가 주어지는 랭킹 125위 안에 들지 못해 또다시 Q스쿨에 응시해야 됐다. 프로데뷔 후 통산 일곱 번째 응시였다.

그런데 세계 골프대회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미PGA투어 Q스쿨에서 '골프의 神'조차 그에게 감동했을까. 헤이스는 엿새 동안 108홀 경기로 펼쳐진 '지옥의 관문'을 공동 8위(합계 15언더파 417타)로 통과하며,2010시즌 투어 카드를 따냈다. 당연히 주위에서는 1년 전의 일을 떠올리고 그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헤이스는 지난해 Q스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당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속이는 사람이 아니다. 골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아마추어 보비 존스는 "스코어를 속이지 않은 나를 칭찬하는 것은,보통 사람들이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박수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Q스쿨에선 2001브리티시오픈 챔피언으로 한때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던 데이비드 듀발(미국),메이저대회 챔피언인 토드 해밀턴과 숀 미킬(이상 미국),타이거 우즈에게 아내 엘린 노르데그린을 소개했던 예스퍼 파니빅(스웨덴)이 줄줄이 탈락했다. 또 제임스 한,강성훈,이원준,박진 등 한국(계) 선수들도 모두 Q스쿨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