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제도를 혁신적으로 개정한 리스본 조약이 난산의 과정을 거쳐 지난 1일자로 발효됐다. 리스본 조약의 효과는 1992년 유럽연합을 탄생시킨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합중국'의 탄생을 언급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지만 유럽의 정치통합이 가속화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구축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려한 위업의 이면에는 항상 어두운 그늘이 있게 마련이다. 리스본 조약의 비준과정에서 드러난 '파행'은 그런 작은 그늘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리스본 조약의 목적 중 하나가 그동안 유럽통합 과정에서 노정돼 온 '민주성의 결핍(democratic deficit)'을 보완하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조약 내용에 유럽의회 권한 확대와 유럽시민의 발안권 부여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리스본 조약은 2004년 유럽헌법을 도입하고자 했던 로마조약의 개정판이다.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비준이 부결됨으로써 로마조약이 사장될 위기에 처하자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 다시 비준절차를 밟게 했던 것이다. '헌법'이라는 표현을 삭제해 유럽인들에게 가져오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완화시킴과 동시에 일부 회원국의 비준절차에 있어 국민투표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속내에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질적 내용이 수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이미 거부된 사안을 다시 비준절차에 회부하기 위한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리스본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많은 회원국의 대다수 국민들이 국민투표를 희망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의회비준 방식을 선택했다. 2005년 5월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 비준에 실패했던 프랑스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번에 프랑스는 헌법이 정한 또 다른 비준 방식인 상하 양원합동회의 의결을 통해 리스본 조약의 비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국민투표 방식을 선택해 비준에 많은 어려움을 감수한 바 있다. 국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하게 할 취지에서 손쉬운 가결이 예상되는 의회비준 방식을 포기했던 것이다. 2005년 프랑스가 유럽헌법안 비준에 실패했던 것도 시라크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의한 비준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리스본 조약 비준을 위해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국민투표를 외면하고 의회 비준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유일하게 국민투표 방식을 택한 나라인 아일랜드의 비준과정도 또 다른 측면에서 매끄럽지 못했다. 잘 알려진 대로 아일랜드는 2008년 6월12일 국민투표에서 이미 리스본 조약의 비준을 거부한 바 있다.

이러한 결과는 유럽헌법안에 이어 리스본 조약의 비준 실패로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의 압력으로 동일한 사안이 다시 국민투표에 회부됐고 그 사이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해 국가파산에 처함으로써 유럽국가들의 도움을 절실히 희구하게 된 아일랜드 국민은 2009년 10월 다시 치른 국민투표에서 리스본 조약을 가결하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의 비준은 좌초 직전의 리스본 조약을 구해냈지만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은 그렇게 붕괴됐다.

리스본 조약이 제시한 제도 개혁은 아직 '미완성'의 형태이다.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수년간에 걸쳐 구체화돼야 한다. 비준과정에서 노정된 '민주성의 결핍' 또한 극복돼야 할 중요한 요소다. 해당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정치통합은 온전한 통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응운 <한국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