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두산그룹 회장(66 · 사진)은 서울대 병원장 시절과 요즘을 "온실에 있다가 정글에 나온 기분"이라고 비유했다.

지난 3월 취임한 박 회장은 중국 옌타이에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현지법인에서 지난 주말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룹 회장에 오른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내외 현장을 돌면서 공부하고 있다"며 "두산의 또 다른 100년을 착실하게 준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룹 회장 해보니…


박 회장은 간담회 내내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서울대 병원장 시절(1998~2004년) 조직 통 · 폐합과 보직 임기제를 실시하는 등 과단성있는 경영능력을 보여줬지만 그룹회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자못 다르다고도 했다.

그는 "서비스업 중 호텔 경영이 어렵다고 하는데,그보다 더 어려운 게 병원 경영"이라고 운을 뗐다. 박 회장은 "호텔만 해도 성질을 내면서 들어오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병원은 온갖 문제를 안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장례식장 식당 등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 수준도 상당히 높다"며 "병원장 시절은 경영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룹회장직을 맡고 난 이후의 차이점에 대해선 "직접적인 업무량은 줄었지만 매출 20조원,3만5000여명의 임직원 등 규모가 주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다"고 털어놨다. 또 "중공업 분야의 사업영역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데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며 "취임 이후 창원,인천뿐만 아니라 중국,베트남,유럽 등 세계 각지의 사업장을 돌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사회 중심 투명경영

박 회장은 형제 및 이사회 중심 경영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박 회장은 "형인 박용곤 그룹 명예회장,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동생인 박용만 ㈜두산 회장을 비롯해 조카들과도 주요 사안에 대해 항상 함께 논의하고 있다"며 "책임감을 갖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너들만의 결정엔 분명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오너 한 명이 모든 걸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고,주주들도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사회에서 주요 경영사안을 투명하게 처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이어 회장 재직기간 동안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때로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 억울할 때도 있지만 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0년 세계 200대 기업 목표

박 회장은 당면한 그룹 차원의 과제와 중장기 사업목표도 밝혔다. 우선 "두산의 유동성 논란은 이미 수개월 전에 일단락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2조6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연말까지 약 3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 같은 적정 수준의 현금 흐름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M&A(합병 · 인수)에 대해선 "미래 가치를 높이고 기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이라면 언제든 인수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다만 최근 완료한 체코 터빈업체인 스코다 파워 인수 이후의 구체적인 M&A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내년 사업계획과 그룹 중 · 장기 목표에 대한 생각도 풀어냈다. 그는 "올해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매출 22조원,영업이익 7500억원의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내년엔 매출 24조원,영업이익 1조5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어 "2015년 그룹 매출 100조원을 달성한다는 중 · 장기 목표 대신 2020년까지 미국 포천지가 선정하는 200대 기업에 진입한다는 새로운 비전도 마련했다"며 "100년을 넘긴 두산이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다져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옌타이=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