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보내야 할 12월이 시끄럽다. 아무리 힘든 한 해였어도 이맘 때면 조용히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며 희망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혼란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송년회 같은 말랑말랑한 얘기는 꺼내기조차 어려운 긴장의 연속이다.

노동계의 파업이 주는 스트레스는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전국 철도파업으로 일반시민과 기업들은 조마조마하다. 지연 운행하는 열차를 기다리는 출근길의 시민들은 "뭐가 문제냐"며 발을 동동 구른다. 기업들은 수출용 화물을 실어나를 트럭을 구하느라 야단법석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연말 물량을 제때 실어내지 못하면 직원 월급 주기도 어렵다며 노심초사다.

철도파업도 버거운데 기업들은 양대노총의 파업 예고에 또다시 떨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에 반대하며 전면파업으로 맞설 태세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기업들은 수출 물량이 쏟아지는 연말만 피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면서 "파업 스트레스에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한 준비작업까지 겹쳐 다들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고 호소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세종시 문제가 불러온 국론 분열 양상은 국민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4대강 살리기에 해당 지역주민과 광역자치단체장들은 환영하지만,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사생결단의 자세로 반대하고 있다. 세종시에 예산을 더 투입해 제대로 된 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원안대로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지자체 주민들은 역차별을 주장하며 '우리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고 외친다. 한 광역자치단체장은 "투정도 이 정도면 밉상이 아니냐"면서 "솔직히 다른 자치단체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충청도 내부에도 갈등이 없지 않다. "꼭 정부부처가 와야 성공하는 것이냐", "정부가 저렇게 많이 해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여론이 있는 게 사실이다.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많은 충청도민들은 드러내놓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심리적 압박을 겪고 있다.

정치적 이슈 외에도 외국어고등학교 폐지 논란과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학부모들을 더욱 머리 아프게 만들고 있다.

고교 2학년 딸을 가진 한 부모는 "입학사정관제로 수험생들이 준비해야 할 게 더 많아졌다"면서 "아이 대학 보내는 데 검토해야 할 게 너무 많아 골치 아프다"고 말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에서 증오가 폭력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갈등이 소통과 제도를 통해 해소되지 못한다는 반증"이라며 "다양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성숙한 절차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진 경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이 시끄러운 증오로 가득차 있는 듯해 보이는 것은) 내재돼 있는 사회 전체적인 불만의 수준이 매우 높은 데다 이 같은 불만을 해소할 합리적인 방식이 부재한 데 따른 것"이라며 "다른 사람을 제도적,정서적,이데올로기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남가주대의 마샬 경영대와 스탠퍼드대 조직행동학과의 공동연구진은 '헐뜯기의 전염'이라는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연구결과는 "남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목격하면 남의 잘못 여부를 따지지 않고 헐뜯는 경향이 증가한다"고 나왔다. 다른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자아가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 안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은 서로를 헐뜯음으로써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연구결과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