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론도 갈린다. 한쪽에서는 '세종시 원안대로'를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애당초 잘못된 것이니 수정'을 주장한다. 야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당이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편이 갈려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재미'를 본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헌재에서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이미 본 '재미'를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위헌 판결로 끝난 일이었는데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부활해서 이름이 바뀐 게 세종시다.

한나라당은 2003년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의 국회통과에 협조하면서 2004년 총선에서 이기면 수도이전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그러나 탄핵파동으로 한나라당은 다수당이 되지 못했다. 2004년 10월 관훈클럽 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대표는 한나라당이 신행정수도법 통과에 협력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까지 했다.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이전 목적을 포기하지 않은 채 위헌판정을 비켜간 교묘한 계획이었다. 한나라당은 행정도시 문제를 두고 찬반이 팽팽히 맞섰지만 결국 당론으로 찬성하기로 해놓고 국회표결에는 23명이 참석,그 중 8명이 찬성했다. 한나라당의 역사적 책임과 무책임을 동시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원안'주장은 국무총리실과 9부2처2청을 이전하는,다시 말해 수도를 쪼개자는 것이다. 수도를 분할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왜 그토록 끈질기게 반대주장이 나오고 국가의 원로급 인사들이 앞장서겠는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건 원칙적으로 옳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약속을 했으며 무엇을 위한 약속이었는가. 정치적 의도가 없는 정책이 어디 있을까만 타당성이 없는 정책이라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 잘못된 약속은 물론 상황이 달라져 약속이행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면 수정되는 게 옳은 일이다.

정부는 세종시 대안을 이 달 중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가. 그동안 많이 논의돼왔던 교육 · 과학 · 기업도시,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이 구체화된 내용을 담아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한 대안이 '원안'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많이 논의된 것이기에 별 게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대안은 사실 대단한 것이다. 다른 지역 입장에서 보면 그런 특혜가 어디 있겠는가. '원안'주장자들은 어떤 대안을 내놓더라도 그걸 '원안'에 더 보태자고 우길 것이다. '원안+?g'는 '원안'에 문제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며 그것 역시 사실상 수정론이나 다름없다.

세종시 문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결하는 양상은 보기에 민망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약속과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더욱 축적했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약속준수만을 주장하다가 승객도 화물도 없는 지방 곳곳에 지어놓은 공항과 같은 세종시가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방공항은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정치권이 앞장서서 추진한 것이었다. 유령공항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목적과 명분이 좋다고 해서 결과도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진 최고지도자다. 그동안 어떤 언급을 했건 국민에게 사과하고 비록 정치적으로 손해 볼 일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하지 않아야한다. 그게 지도자와 정권의 역사적 책무다. 국민들은 그걸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정치권에서 비롯된 문제라서 정치권이 풀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국민 전체에게 물어야 한다. 사안 자체가 너무나 중차대하고 국민 전체에 물어야 할 성격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경제는 성장한다고 할까.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