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업체인 오라클과 서버 시장 4위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합병 계획에 유럽연합(EU)이 태클을 걸고 나섰다.

EU집행위는 9일 이의성명(statement of objection)을 통해 "썬마이크로를 인수한 오라클이 썬이 소유한 오픈소스 DBMS 소프트웨어인 MySQL을 손에 넣을 경우 시장지배력이 강화돼 EU 역내 소프트웨어 기업에 독점 피해를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양사 합병 승인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U집행위는 이번 합병 승인에 대해 내년 1월19일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오라클은 지난 4월 74억달러(약 8조6000억원)에 썬을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미국과 EU의 반독점 심사 결과를 기다려왔다. 미 법무부는 지난 8월 두 회사의 합병을 이미 승인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EU의 승인 거부와 관련해 "EU의 반독점 관련 조사가 늦어지면서 썬 측이 매달 1억달러씩 손실을 보고 있다"며 "MySQL이 독점 피해를 줄 것이란 EU 측의 주장은 DBMS 시장에 대한 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EU의 이번 조치는 세계 각국이 최근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해외 다국적 기업들의 M&A(인수 · 합병)에까지 반독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새로운 반독점법을 발효시킨 중국은 해외 기업 M&A 방해전략에 거의 챔피언급이라 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코카콜라가 중국 최대 과즙음료업체 후이위안을 24억달러에 인수하려는 계획을 불허한 게 대표적이다.

중국은 일본 가전업체인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전기)의 산요전기 인수에 대해서도 규제의 벽을 높였었다. 중국 상무부는 일본 파나소닉과 산요의 합병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다가 파나소닉이 하이브리드카에 쓰이는 니켈금속 전지 생산부문을 매각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겨우 승인했다. 두 회사의 합병 방침은 작년 11월 결정됐으나 중국 측이 내건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1년 만인 지난 5일에서야 파나소닉이 산요 주식의 공개매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 일본 미쓰비시레이온은 지난해 11월 영국의 아크릴업체 루사이트를 16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해놓고도 지난 5월까지 중국의 승인 보류로 애를 먹어야 했다.

인베브와 안호이저부시가 합병해 생긴 AB인베브가 올 들어 중국의 간판 맥주업체 칭다오맥주 지분 19.9%를 일본 아사히맥주에 매각한 것도 중국 당국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호주 철광석업체인 BHP빌리턴과 리오틴토의 합작도 불허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동안 해외 기업 간 M&A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미 정부도 17년 만인 지난 9월 말부터 M&A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손질에 들어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M&A 심사기준은 1992년 이후 수정된 적이 없다.

이미아 기자/베이징=조주현 특파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