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은 '글로벌 인재포럼 2009'개막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기존 WTO(세계무역기구)와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로는 세계 경제 정상화가 어렵다"며 "한국,중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이 주도하는 보다 강력한 세계 경제 공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고 강조했다.

"미국이 한 · 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미루고 있는 것은 실책"이라는 지적도 내놨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느라 무역정책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며 "한 · 미 FTA보다 한 · EU FTA가 먼저 발효되면 미국이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기가 남긴 것

버그스텐 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져 60년을 유지했던 글로벌 경제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위기의 원인을 감지하지도,해결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만큼 새로운 질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국제수지 불균형을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적자 누적 국가가 지나친 대출과 리스크가 큰 금융상품 투자를 일삼으면서 위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금융위기 이후 일고 있는 보호주의 무역 움직임도 기존 경제 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WTO 도하라운드 협상이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

IMF도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버그스텐 소장은 "주요 회원국 정부의 규제를 조율할 수 있는 역량도,금융시장의 거시적인 움직임을 읽는 능력도 충분치 않다"며 "지나치게 흑자 규모가 큰 나라에 무역수지 조정을 유도할 만한 도구가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외환보유 경쟁 해법은 SDR(특별인출권)

버그스텐 소장은 새로운 세계 경제 시스템의 지향점을 '성공사례의 공유'로 요약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각국이 찾아낸 경제 회생 해법을 여러 나라에 동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국가 간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선진국이 신흥공업국에 비해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금융위기의 타격을 덜 받은 아시아지역 신흥공업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지혜를 선진국이 빌려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설명했다.

위기 이후에 풀어야 할 과제로는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를 꼽았다. 버그스텐 소장은 대표적 사례로 미국과 중국을 들었다. 미국의 적자는 매년 8000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중국의 흑자 규모는 4000억달러를 넘는다.
그는 신흥공업국들이 자국 통화가치 절하라는 극약처방을 써가며 무역흑자 폭을 늘리고 있는 이유를 외환보유액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출을 통해 충분한 외화를 획득하지 못하면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IMF가 5년간 SDR를 회원국에 나눠주는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외화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흥공업국들의 경제정책 기조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공업국의 시대

앞으로 구축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의 핵심은 신흥시장과 개도국이 될 것이라는 게 버그스텐 소장의 예측이다. 그는 특히 아시아 지역에 주목했다. 중국과 인도가 세계 2위와 3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 경제 시스템의 무게의 추가 자연스럽게 아시아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는 아시아 중심의 경제질서가 G20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G7 체제에서 한 곳에 불과했던 아시아 국가의 숫자가 5개국으로 늘어난 것은 아시아의 강해진 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버그스텐 소장은 "WTO와 IMF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유럽 국가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WTO 상임이사회를 아시아 신흥개도국에 개방하고 미국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IMF 결정에 대한 비토권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