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분리돼 정책금융공사와 산은금융지주로 새롭게 출발함으로써 산업은행 민영화의 1단계가 마무리됐다. 198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산업은행의 정책금융과 상업금융의 분리 필요성을 지적한 지 25년 만에 우리나라 금융의 해묵은 주요 과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민영화 될 산은지주의 출범을 계기로 한국금융의 현안과제와 산은지주의 바람직한 발전방안을 조망해 본다.

한국금융의 최대과제는 금융업이 제조업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금융업에는 제조업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없다. 제조업과 같이 신성장동력산업이나 수출산업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국내 대기업의 국제금융 서비스를 감당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금융업은 낙후돼 있다. 원래 어느 나라에서나 금융업은 제조업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느리다. 제조업은 기술과 하드웨어 중심의 인프라가 발달하면 발전할 수 있지만,금융업은 정치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인프라가 발달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이 발전하려면 법률,회계,신용정보,금융정책 등과 같은 금융인프라가 발달돼야 하는데,이러한 금융인프라는 국가의 전반적인 수준과 분리돼 발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되었지만 금융업을 포함한 규제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필자는 이른바'산업은행 문제'의 해결은 넓게는 금융 전반,좁게는 금융정책의 실력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지난 30여 년간 산은의 상업금융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시장마찰이 심화돼 왔다. 민간은행은 불공정한 경쟁에 놓이고 산은은 내부적으로 축적한 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 지속됐다. 산은의 민영화는 그 당위성을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풀지 못했던 과제였다. 그래서 산은의 민영화를 환영하며 금융업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산은지주는 기존의 투자은행 모델을 보완해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및 자산운용을 겸업하는 상업금융 전문 투자은행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산은지주가 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에 특화된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글로벌 자본시장이 뮤추얼펀드,사모펀드,헤지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금융상품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만큼,적극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은지주가 정부의 규제완화를 통해 새로운 사업영역을 확보하려면 산은지주의 내부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의사결정과 성과평가 및 보상체계를 민간회사의 수준으로 바꿔야 하고,근무시간을 포함한 일하는 방식도 민간회사에 걸맞게 바꿔야 한다. 특히 산은지주의 자회사가 된 산업은행은 공기업의'때'를 완전히 벗겨내야 한다. 이러한 내부혁신이 전제돼야 공기업의 지위를 당분간 유지할 산은지주에 대한 규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내부혁신을 전제로 정부는 산은지주의 CEO를 제외한 지주회사 및 자회사의 인사에 관여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영미(英美)의 금융업이 제조업에 비해 지나치게 팽창하면서 일어난 비극이다. 반면에 한국의 금융업은 제조업에 비해 지나치게 낙후돼 경제발전의 병목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업이 제조업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우선 도매금융시장에서 고부가가치의 기업금융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산은지주가 기업금융의 첨병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는 규제를 개선하고 산은지주는 내부혁신을 가속화하기 바란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