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소기업 대출 전문 은행인 CIT그룹이 1일(현지시간) 파산보호를 신청함에 따라 아직 취약한 미 경제와 금융시장이 또 다른 악재에 직면했다.

CIT의 파산보호가 이미 예상됐던 일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고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키워 경제 회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CIT그룹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이날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증시는 지난주 미국 증시의 급락 여파에다 CIT의 파산보호 신청 영향까지 겹쳐 하락세로 출발했다.

일본 국채 가격이 상승하고 엔화가치도 3주만에 최고치로 오르는 등 안전자산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만큼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전문 은행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CIT그룹은 작년 말 미 정부로부터 23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이후 자금난이 계속됐고 지난 7월 정부의 추가 지원을 받는 것에 실패한 이후로는 결국 파산보호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CIT그룹은 채권자들과 채무를 주식이나 새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교환하는 방안을 협의해왔지만 이것이 성사되지 않자 채권자들과 구조조정방안을 마련해 파산을 신청하는 사전조정 파산보호의 길을 택했다.

CIT그룹은 이날 파산보호 기간에도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지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영업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파산보호가 미국의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관한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금융시장이 호전되면서 대형 상장기업들은 회사채나 신주를 발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용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에는 이런 길이 여전히 막혀 있는 상태다.

특히 돈을 빌려 다른 대출금을 되갚는 식으로 버텨온 중소기업들의 경우 CIT의 파산보호로 대출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줄도산을 할 가능성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CIT의 파산보호가 경제 전반을 궤도에서 탈선시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업들의 자금사정을 어렵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스파이어 캐피털의 파트너인 릭 패터슨은 자금 흐름이 원활치 않은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 CIT의 파산보호는 자금이 필요한 중소 제조업체나 소매업체에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중소기업의 도산은 그렇지 않아도 개인대출 및 상업용부동산 부실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소 금융회사들에 이중고가 돼 잇따른 파산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주에 9개 은행을 폐쇄했다.

이에 따라 올해 파산한 은행 수가 모두 115개로 늘면서 120개 은행이 파산한 1992년 이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게 됐다.

중소기업과 중소은행들의 몰락은 실업사태나 금융시장 상황의 악화를 불러오고 이것이 다시 소비 위축과 대출 부실 등 악순환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5%를 기록,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난 이후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끝날 경우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과 함께 미국의 9월 소비지출도 5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9월에 9.8%를 기록한 미국의 실업률이 10월에는 10%에 근접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CIT의 파산보호는 중소기업과 중소 은행의 어려운 현실을 각인시킴으로써 경제 전망에 대한 비관론을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