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 연예인 자살 소식을 자주 듣는다. 이들 자살의 공통점 하나가 '악성 댓글'이다. 루머가 퍼지면 네티즌은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으면서도 그 연예인에게 온갖 욕을 다 퍼붓는다.

당사자가 끔찍한 고통을 겪을 것을 알면서 속으로 희희낙락한다면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악성 댓글에 법적 책임을 묻는 법률이 생겨난 것은 잘된 일이다. 그간 수많은 연예인이 냉가슴을 앓다 목숨을 스스로 끊었는데,그렇다면 악성 댓글을 올린 이는 간접적인 살인을 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4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이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 때문에 집단수용소에서 죽어갔다. 유대인이 이렇게 많이 희생된 책임을 우리는 히틀러와 괴링,괴벨스 등 나치정권의 정책 입안자들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수백년 동안 유럽 사회에는 반유대인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왜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이미지는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의 머리에 박혀 있던 것이었고,이 작품 이후 더욱 나빠져 세월이 흘러도 변할 줄 몰랐던 것이다.

게르만족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싶은 나치에게 '유대인을 박멸하자'는 구호는 민족의 단결을 꾀하게 했다. 게르만족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민족에게도 이 구호는 받아들여졌고 호응까지 얻었다. 보석상이나 고리대금업,전당포를 하면서 저희끼리만 노는 이교도 유대인이 눈엣가시였는데 체포,구금,처형되는 등 고생을 하니 유럽인들은 '그것 쌤통' 하는 기분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즉 유대인 학살의 책임은 유럽인 전부가 나누어 져야 한다.

고 이오덕 선생이 1977년에 펴낸 에세이집 제목이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이다. 초등학교 교장을 오래 하면서 교육현장에서 쓴 23편의 에세이가 책으로 묶여졌다. 그런데 책에 그려진 아이들은 조금도 착하지 않다. 식목일에 묘목을 나눠주면 거꾸로 심거나 파묻어 버린다. 개구리와 두꺼비를 잔인하게 죽이며 노는 아이들,욕을 일상적으로 뱉는 아이들,인사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불러도 대답이 없고 뭘 물어도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

이오덕 선생의 책에서 큰 충격을 받은 이야기가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단 둘이 사는 외딴집에 며느리가 아기를 낳았다. 아들이 외지에 나가 두 식구 외롭게 살던 터에 아기가 태어나 집안에 활기가 돌게 되었다. 그런데 동네 아이들이 날마다 이 집 앞을 지나면서 욕을 하고,마당이고 마루고 장독이고 허구한 날 돌을 던진다. 불안에 떨던 할머니는 교장선생을 찾아가 애들이 제발 돌 좀 안 던지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이오덕 선생이 알아보니 외지에 나가 있는 그 집 아들이 동네 부잣집의 머슴을 살았다는 것이 주된 얘기였다. '머슴의 집이니까' 하는 업신여기는 마음이 아이들 손에 돌을 쥐게 한 것이었고,남자아이고 여자아이고,6학년이고 1학년이고 돈을 던지며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던 것이다.

60년대의 일이지만 이 일화가 시사해주는 것이 있다. 타인의 입장과 처지를 잘 모르면서 집단의 분위기에 편승해 별 생각없이 가해자의 일원이 된다면 그 또한 죄를 짓는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들킨 여자를 끌고 온 율법학자와 바리세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모세법에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예수에게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 이 말을 한 것인데 예수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고 함으로써 그들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게 하였다. 남의 말만 듣고 내가 죄짓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