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KIA가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은 'CK포' 최희섭과 김상현 덕분이 아니다. 해결사는 다름아닌 두 번의 역전타를 때린 이종범.6번타자로 나선 이종범은 누상의 4번 최희섭,5번 김상현을 불러들여 점수를 뺐다. 경기 전 황병일 KIA 타격 코치가 "김상현과 최희섭은 집중 견제를 받기 때문에 클린업 트리오보다는 테이블 세터 노릇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작전이 적중한 것이다.

테이블 세터(table setter)는 밥상을 차려놓은 선수들이다. 3~5번 중심 타선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 주는 1,2번 타자들을 테이블 세터라 부른다. 1번 타자는 살아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안타를 많이 때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선구안이 좋아 볼넷도 많이 얻어야 한다. 안타와 볼넷을 합친 출루율은 1번 타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다. 보통 출루율이 3할 중반 이상이면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는 것도 톱 타자의 역할이다. 투구 수가 많아지면 투수의 체력이 떨어져 후속 타자들이 실투의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1번 타자는 출루 후에도 할 일이 많다. 빠른 발과 주루 센스로 상대 투수를 괴롭혀야 한다. 기동력이 좋은 타자들이 주로 1번을 맡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2번 타자는 1번 타자와 중심 타선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보통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 타자들이 2번을 차지한다. 번트를 포함한 희생타 성공률이 높고 다양한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빠른 발과 순간적인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2번 타자에게도 높은 출루율은 필수다. 대부분 테이블 세터진들은 단타에 능하고 발이 빠르다.

국내 프로야구의 역대 최고 테이블 세터진으로는 이종범이 꼽힌다. 그는 14시즌을 뛰면서 출루율 3할 후반 이상을 7번이나 기록했으며 1994년에는 프로야구 역대 한시즌 최다 안타인 196개와 최다 도루인 84개를 함께 남겨 호타준족의 전범이 됐다. 전준호(히어로즈)도 높은 출루율과 투수를 흔드는 주루 센스를 갖춘 '1번 타자의 정석'으로 불린다. 19년 동안 출루율 0.350 이상을 14번 찍었고 역대 도루 1위(550개)를 기록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의 '개구리 번트'로 기억되는 김재박,화려한 주루 플레이의 정수근,2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한 이정훈 등도 역대 최고 테이블 세터진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