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귤북지'(南橘北枳)에는 촌철살인의 지혜가 있다. 남쪽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는 것이다. 토양이 바뀌면 과실도 달라진다. 결국 씨앗보다 토양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책은 결코 '진공' 속에서 시행되지 않는다. 정책이 시행되는 사회적 조건을 성찰하지 않으면 정책은 실패하게 된다.

복수노조 허용은 '경쟁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기존 노조의 독점적 지위를 법으로 보호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맞는 방향이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듯이,조합원의 선택을 받지 못한 노조 역시 궁극적으로 퇴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명분은 좋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노조는 어떤 결사체인가. 정치투쟁을 마다하지 않은 강경 단체 아닌가? 이 같은 현실은 각종 국제기구의 '경쟁력평가'에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 2009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노사간 협력'에 대한 평가는 세계 133개국 중 131위다.

노사관계의 새로운 시도는 '노사간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복수노조는 명백히 아니다. 상급단체인 한국노총,민주노총은 '복수노조를 지렛대'로 기존 노조에 대항하는 신규 노조의 설립을 통해 세력 확장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노조의 기본 취지는 조직대상을 같이하는 노조 간 선의의 '생산적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일의 해방을 위해 오늘 피에 젖은 깃발을 올리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노조문화 속에서 이 같은 취지를 살리기는 어렵다. 진흙탕 싸움은 결국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게 되고,합리적 노동운동 세력마저 강경해질 수 있다.

복수노조 문제를 '창구단일화'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하면 문제가 없다는 정책 사고는 위험하다. 창구단일화가 복수노조의 난립을 막아주는 규율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사무 · 관리직 등 생산직 이외의 노조가 설립된다. 사무 · 관리직은 그동안 노사 간의 완충역할을 해왔기 때문에,이들 직종의 노조 결성으로 완충지대가 사라지면 노사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

창구단일화도 쉬운 일은 아니다. 동일 직종 내의 '복수노조',상이한 직종 간의 '다수노조',그리고 상이한 상급단체와 연계된 노조 간에 창구단일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창구단일화를 위한 거래비용은 그만큼 생산활동을 위축시켜 노조 조합원의 소득을 감소시킨다.

정부는 복수노조 시행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13년간이나 유예했으니 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예기간 자체가 복수노조 시행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유예기간은 복수노조가 시행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준비기간'일 터이다. 하지만 정부는 13년간 손을 놓았다. '선(先)시행,후(後) 보완'의 정부 방침은 실은 무책임한 처사다. '후(後)보완이 아닌 사전준비'를 했어야 했다. 일례로 정부는 노동조합 '최소설립요건'마저 정비하지 않았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연계시킬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복수노조 허용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선물이어서는 안 된다. '노사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사용자의 전임자 임금지급은 금지돼야 한다. 다만 조합비로 전임자임금을 책임질 수 없는 영세한 노조는 차등적으로 접근하면 된다. 복수노조 허용은 노사관계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복수노조라는 '새 옷'을 입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정책순서일 것이다. 국가정책은 기업의 컨설팅과 다르기 때문에 실패가 용납될 수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