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대체로 미국 경기회복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부실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 은행의 대출 기능이 여전히 위축돼 있는 데다 소비자들은 자산 손실로 여전히 소비를 꺼리는 탓이다. 베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경제학 교수(57)는 미 가계가 부동산 시장 폭락으로 잃어버린 자산을 회복하는 데는 적어도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주택시장도 2006년과 2007년 초 받았던 옵션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환 시기가 오면서 연체가 늘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년 미 경제는 2% 정도 성장하는 지극히 완만한 회복세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글로벌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각국의 소비 패턴이 바뀌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이켄그린 교수로부터 미국 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들어봤다.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는 데도 줄곧 상당히 더딘 경기회복을 전망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은행의 대출 기능이 약화됐다. 은행이 보유한 모기지 관련 증권 등 자산의 손실위험이 여전한 탓에 통상 경기회복기에 나타나는 공격적인 신용 공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 부문의 위기로 경기침체가 촉발된 만큼 다른 때보다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 전세계 생산 규모의 2%에 그친 글로벌 경기부양책으로는 6%에 달하는 생산 갭의 절반 정도만을 메울 수 있다. 중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지만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에 불과해 세계 경제 회복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택시장 침체로 상당한 규모의 자산 손실을 본 미국인들이 저축을 확대하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미국이 소비를 줄인 만큼 중국 등 신흥국에서 더많이 소비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뉴 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 시대가 왔다는 분석도 있다.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미 실업률이 5%대로 떨어지려면 4~5년 이상 걸릴 것이다.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몇년 동안 성장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얘기다. 특히 장기 경기침체로 고실업이 오래 지속되면 이코노미스트들이 흔히 얘기하는 자연실업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뉴 노멀'은 현재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할 뿐 정확하게 개념이 정리된 용어라고 할 수 없다.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지만 은행이 돈줄을 죄면 투자 혹은 소비가 살아나기 어렵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경제성장을 끌어올린 요소는 풍부한 신용이었다.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경기회복 패턴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어떤 형태의 회복을 예상하는가.

"회복 기간이 상당히 긴 'U자'형이 될 것이다. 경기 사이클에 비춰볼 때 침체가 깊었던 만큼 강한 반등을 해야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수요와 성장은 투자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기업들은 아직도 투자에 신중하다. "

내년 미국 성장률 전망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금인상률보다 높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성장 전망을 수치로 얘기하긴 어렵지만 운이 좋으면 2% 정도의 성장을 할 것으로 본다 'V자'형 경기 회복기의 첫해에 5% 이상 성장이 가능하다고 볼때 아주 저조한 성장률이라고 할 수 있다. "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 및 통화 정책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나.

"경제가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에 둘 다 중요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유동성을 회수하면 현재 수요 원천인 투자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확실하게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로 의회에서 추가 경기부양책 마련이 여의치 않은 만큼 FRB가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야 한다. "

최근 미 주택시장이 안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통계로 보면 그렇다. S&P케이스실러 지수를 봐도 라스베이거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 주택 침체가 끝났다는 시각이 많지만 위험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2006년과 2007년 초 받았던 페이옵션모기지(ARM)의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채무불이행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ARM은 초기 몇년 동안 대출자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대신 덜 낸 이자를 나중에 원금에 얹어 내야 한다. 압류가 늘면 주택 가격이 한 차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주택시장 움직임은 실업과 함께 소비 심리를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

미국인들이 주택시장 침체로 공중으로 사라진 자산가치를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미국 경제성장 전망이 맞고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8%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5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본다. "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내년에 한국에서 열린다.

"G7,G8을 대체할 수 있는 바람직한 그룹이라고 본다. 그동안 IMF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에 더많은 투표권을 주자는 얘기도 나왔고 또다른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장치 마련도 논의됐다.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도 논의될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이머징 국가들이 세계 금융구조를 어떻게 바꾸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대안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나왔던 방안의 이행을 따져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개혁 방안은.

"수백년 역사에 비춰볼 때 시장이 있는 한 위기는 오게 마련이다. 다만 그 진폭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은행이 적정 자본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 대비한 완충 자본을 충분히 갖도록 감독해야 한다. 은행뿐 아니라 모든 금융회사가 적절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AIG는 주정부 보험감독위원회의 감독을 받다가 파산 위기에 몰렸었다. 주정부는 파생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가 뭔지도 몰랐다. 과잉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포괄적인 감독시스템이 필요하다. "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꼽히는 글로벌 불균형 문제는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보나.


"1,2년 내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국의 소비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등 무역흑자국이 더 많은 소비를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자녀씩만 두는 중국 사람들은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인들이 소비를 많이 하게 하려면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미국인들의 소비가 늘어 연방 적자는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대 말쯤 해소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

금융위기가 터진 뒤 은행 관행에 무슨 변화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나.

"레버리지(차입)를 줄이고 대출 잣대를 엄격하게 적응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투자 및 대출에 따른 위험을 꼼꼼히 따지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적정 감독이 뒤따르지 않는 한 월가 금융회사들은 언제 다시 과다 위험을 무릅쓰고 수익을 좇는 나쁜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 "

가장 이상적인 세계 통화시스템은.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경의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에 견줘 생각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좋은 시스템은 아니지만 우리가 경험해 본 시스템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세계 통화시스템은 때론 각국 간 이해 상충으로 불편한 상황을 맞기도 하지만 유연한 환율변동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각국은 달러 유로화 등 다양한 통화로 외환을 보유할 수 있다. 10년 후에도 변동환율제가 유지될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위상은 다소 약화되고 유로화의 중요성이 좀더 커질 것이다. 통화시스템 변화보다는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 "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묘사되기도 한다. 한국이 계속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가져올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정치적인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지만 피할 수 없다. 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라면 서비스 산업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그래야 고용도 창출할 수 있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컴퓨터 서비스와 금융서비스도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소매판매 교육 분야의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한다.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시장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자본이 직접투자(FDI)를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유연한 노동시장,소매 판매의 생산성 측면에서는 미국 모델을 눈여겨봐야 한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