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수 연구실장 "眞景山水엔 조선의 예술혼 담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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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책 펴낸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문화를 식물에 비유할 때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에 해당합니다. 이념의 차이에 따라 예술양식이 바뀌는 것이 마치 뿌리에 따라 꽃의 형태가 결정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 제가 겸재를 만나 조선시대 '진경문화'의 꽃과 뿌리를 연구하게 된 것은 숙명이자 영광입니다. "
겸재 정선의 사상과 화풍을 40년간 연구해온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68 · 사진)이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을 출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왕조 500년이 왜곡된 만큼 이를 바로잡으려면 조선 문화사 중 절정을 이룬 '진경시대'를 조명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그 시대의 핵심 인물인 겸재를 연구하게 됐다"고 집필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올해가 겸재 서거 250주년인데 한국경제신문의 연재 기획 '진경산수'를 비롯해 화보집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10여차례의 겸재 전시회,대학 강연 등에서 다 얘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답하고 연구생활 40년을 정리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원고지 3673장,도판 206장,참고 그림(삽도) 147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겸재 화풍 연구 및 가계도,교우관계,학맥,관직생활 등 개인사와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상황을 편년체 방식으로 조명했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던 1966년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의 제의로 간송미술관에서 일하면서부터 겸재와 인연을 맺었죠.하지만 겸재 연구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 간송이 겸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작품들을 수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간송이 수집한 겸재 작품 중 64세 때인 1739년에 청운동 골짜기를 그린 '청풍계',63세에 그린 '관동명승첩',한강의 명승지를 그린 '경교명승첩',72세 때 금강산에 다시 가 그린 '해악전신첩' 등은 진경산수화법의 완성도를 높인 수작들"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밝혀낸 진경시대는 영 · 정조시대를 전후한 250년으로 문학과 사상,미학이 함께 어우러지며 통섭을 이룬 문화적 황금기였다. "겸재는 화가이기 이전에 조선 성리학의 적통을 이어받은 성리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사서삼경에 박통하고 그중에서도 성리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주역에 정통해 당대 제일로 꼽힐 정도였으니까요. 이 시기에 송강 정철(1536~1593년)의 '관동별곡' 등 문학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오더군요. 진경의 흐름이 나오기 전인 조선 전기에는 화가들이 소를 그리면 물소를 그릴 정도로 중국의 그림을 그대로 따랐거든요. "
그는 앞으로도 겸재 연구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진경시대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겸재 정선의 사상과 화풍을 40년간 연구해온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68 · 사진)이 《겸재 정선》(현암사,전3권)을 출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왕조 500년이 왜곡된 만큼 이를 바로잡으려면 조선 문화사 중 절정을 이룬 '진경시대'를 조명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그 시대의 핵심 인물인 겸재를 연구하게 됐다"고 집필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올해가 겸재 서거 250주년인데 한국경제신문의 연재 기획 '진경산수'를 비롯해 화보집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10여차례의 겸재 전시회,대학 강연 등에서 다 얘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답하고 연구생활 40년을 정리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원고지 3673장,도판 206장,참고 그림(삽도) 147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겸재 화풍 연구 및 가계도,교우관계,학맥,관직생활 등 개인사와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상황을 편년체 방식으로 조명했다.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던 1966년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의 제의로 간송미술관에서 일하면서부터 겸재와 인연을 맺었죠.하지만 겸재 연구는 간송 전형필 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 간송이 겸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작품들을 수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간송이 수집한 겸재 작품 중 64세 때인 1739년에 청운동 골짜기를 그린 '청풍계',63세에 그린 '관동명승첩',한강의 명승지를 그린 '경교명승첩',72세 때 금강산에 다시 가 그린 '해악전신첩' 등은 진경산수화법의 완성도를 높인 수작들"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밝혀낸 진경시대는 영 · 정조시대를 전후한 250년으로 문학과 사상,미학이 함께 어우러지며 통섭을 이룬 문화적 황금기였다. "겸재는 화가이기 이전에 조선 성리학의 적통을 이어받은 성리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사서삼경에 박통하고 그중에서도 성리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주역에 정통해 당대 제일로 꼽힐 정도였으니까요. 이 시기에 송강 정철(1536~1593년)의 '관동별곡' 등 문학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오더군요. 진경의 흐름이 나오기 전인 조선 전기에는 화가들이 소를 그리면 물소를 그릴 정도로 중국의 그림을 그대로 따랐거든요. "
그는 앞으로도 겸재 연구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진경시대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