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에 단독으로 참여한 효성이 채권단 지분을 부분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효성 고위 관계자는 5일 "채권단이 보유한 하이닉스 지분(28.07%) 중 전부가 아닌 일부(15~20%)만 인수하는 방안을 인수방법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적은 지분을 인수하면 당장의 자금 부담은 덜하겠지만 향후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효성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채비율을 늘리지 않으면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과 업계는 이 같은 방안이 자금여력이 부족한 효성과 조기매각을 원하는 채권단 측의 이해관계를 상호 절충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인수자금 크게 줄어

현재 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하이닉스 지분은 1억6548만주다. 효성은 이 중 최대주주 지위를 점할 수 있는 15%가량의 지분을 우선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초기 인수금액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2조5000억원 미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분 전체를 인수하는 것보다 1조원 이상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자금여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효성 입장에선 최상의 인수 시나리오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효성의 지난 2분기 말 부채비율은 142%,총 차입금은 2조1000억원에 달한다. 대규모 추가 차입이 이뤄지면 재무상태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효성이 지분을 일부만 인수하면서 전략적 투자자나 재무적 투자자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경우 의외로 자금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과의 공동경영체제?

부분인수의 가장 큰 문제는 경영권을 완벽하게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과 소액주주들에 휘둘려 이사회 구성과 투자 등 주요 경영현안들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100% 행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하이닉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22% 수준이다.

금융권에서는 효성이 하이닉스 지분을 부분 인수한다면 초기에 외환 · 우리 · 산업 · 신한은행 등 채권단과의 공동책임경영 체제 구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효성은 하이닉스와의 통합경영이 안정되고 추가 자금을 마련하는대로 채권단의 나머지 지분을 매입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 "가급적 빨리 매각 마무리"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서 칼자루는 채권단이 쥘 수밖에 없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가기간산업인 반도체 사업이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부족한 기업에 넘어갈 경우 투자 위축과 국제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상승국면에 진입한 상황에서 굳이 매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시장가치를 충분히 높인 뒤 매각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채권단 관계자는 "앞으로 대형 매물들이 줄줄이 인수 · 합병(M&A) 시장에 대기하고 있는 만큼 하이닉스가 순조롭게 매각돼야 다른 M&A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매각을 가급적 빨리 마무리짓는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