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양자 및 다자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번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일부터 시작된 방미 기간을 활용해 일괄,포괄 타결이라는 자신의 구상을 보다 구체화한 방안을 국제사회에 천명하고 관련국들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 폐기 보상으로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등의 내용도 담길것으로 알려졌다.


◆왜 일괄타결인가

이 대통령은 그동안 포괄적 패키지 딜,일괄 타결 등의 구상을 여러 번 제시했다. 이는 북핵과 관련해 모든 현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즉,북한이 핵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폐기한다면 국제사회는 대대적인 경제 지원에 나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은 올해 8 · 15경축사에서도 "정부는 북한이 핵포기의 결심을 보여준다면 남북경제공동체 실현과 북한경제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프로그램 적극 실행 등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지난 18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특강에 참석해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한꺼번에 포괄적으로 협상하는 방안에 대해 현재 5자 간 협의를 지속적으로 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일괄적 타결을 추진하는 것은 단계적 절차를 밟아 핵폐기에 이른다는 이른바 '행동 대 행동'원칙으로는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타협과 파행,진전과 후퇴를 반복해온 과거 북핵 협상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지금까지 북핵협상에서 북한은 '살라미 전법(흥정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야금야금 실속을 챙기는 전법)'을 구사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통합된 접근법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핵협상에서 일정 부분 이행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와 관련한 근본적인 조치에 나설 경우 한번에 의미 있는 반대급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1994년 핵동결에 따른 에너지 지원,2005년 9 · 19 비핵화 원칙 합의 이후 번번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예에서 알 수 있듯,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놓고 단계별 처방과 보상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입장이다. 보상과 관련,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체제 안전 보장까지 제시할 것으로 알려져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유인책이 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난제도 많아

이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한 · 미 간에는 어느 정도 조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 · 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구상을 제안했고,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당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란 말로 공감을 표한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23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와 잇달아 회담을 갖고 '일괄 타결'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구체적 사안으로 들어가 보면 난제들이 적지 않다. 북한이 확실한 북핵 폐기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하는지를 놓고 기싸움을 벌일 공산이 크다. 또 국제적인 지원 문제와 관련해 각국 간의 분담 문제 등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뉴욕=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