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로운 역사의 전환점이다. 정치와 행정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출발일이다. "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16일 총리 지명투표 직전 참의원 의원총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총리 지명 후 첫 기자회견에선 "일본의 역사가 바뀐다는 감격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 나라를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 국가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앞으로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날 중의원과 참의원의 총리 지명투표에서 각각 과반표를 획득해 일본의 제93대 총리로 정식 취임했다. 하토야마 신임 총리는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대행을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 후지이 히로히사 최고고문을 재무상에 임명하는 등 총 17명의 각료로 새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로써 일본에선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야당이 총선에서 단독 과반의석을 확보해 정권을 교체하는 역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국민 생활중시(복지)와 관료정치 개혁을 내걸고 집권한 민주당 정권이 관치금융 회귀 움직임을 보이는 등 우려스러운 모습도 나타났다.

◆자녀수당 신설 · 휘발유세 폐지 우선

반세기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일본은 정치의 패러다임이 확 바뀔 전망이다. 정책도 사람도 물갈이됐다. 하토야마 내각의 면면을 보면 개혁 의지가 느껴진다. 새 정부의 핵심 기구로 신설된 국가전략국을 담당할 간 나오토 부총리는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관료개혁에 대한 신념이 뚜렷하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이고, 나가쓰마 아키라 후생노동상은 자민당 정권의 연금 부실 기록 문제를 파헤친 주인공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선거공약을 확실히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자녀수당 신설과 휘발유세 폐지 등 내수를 자극하는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에 대해 그는 "신설된 행정쇄신회의에서 낭비예산을 줄이면 재원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지난 15일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던 관료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역설했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미 · 일 관계 악화 우려와 관련, "이달 하순 예정된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서로 솔직한 의견교환으로 신뢰감을 쌓는 게 중요하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선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긴요하다"며 "잘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가메이 쇼크'…경제계 한숨

그러나 경제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우정 · 금융상으로 임명된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가 취임 직전 '우정민영화 백지화'와 '은행 대출 상환유예' 등 반(反)시장적 발언을 쏟아내자 민간 경제계에 불안감이 감돈다.

가메이 우정 · 금융상은 "우정민영화를 바로잡는 게 새 정치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원래 자민당 의원 출신이지만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우정민영화 추진에 반발해 탈당한 인물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비대해진 '관제금융'을 민영화시켜 자금 흐름을 효율화하는 개혁이 우정민영화"라며 "새 정부가 우정민영화를 백지화하려는 것은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가메이 우정 · 금융상은 실적이 악화된 중소기업과 개인의 대출금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과 개인이 이자를 지불하는 경우 원금 상환을 3년 정도 유예토록 은행을 당국이 지도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관계자는 "민간 은행과 대출자 간의 사적계약에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것 자체가 관치금융적 발상"이라며 "대출 원금 상환을 유예했다가 은행이 손실을 입으면 정부가 책임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 도요타자동차 노조 간부 출신인 나오시마 마사유키 정조회장이 경제산업상이 된 데 대해선 일본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나오시마 경산상은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의 과감한 억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 기업들에 부담스런 정책을 만들어낸 주역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