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환율 하락이 수출 기업의 경쟁력과 경기 회복세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최근 환율 하락은 글로벌 경기 회복과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분석되지만 고환율이 수출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 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의 보호막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수급 상황은 이미 1100원대

주요 경제연구기관과 금융사들은 원 · 달러 환율이 연내에 1200원을 하향 돌파하고 1100원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6일 '2010년 세계 경제 및 국내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4분기 환율이 평균 1180원으로 떨어진 뒤 내년에는 평균 1130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음 주에 경제전망을 발표할 계획인 LG경제연구원도 내년 원 · 달러 환율 전망치를 1140원으로 잠정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교역량과 물가 등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했을 때 원화가 13%가량 저평가돼 있다며 환율의 추가 하락을 전망했다. JP모건은 4분기 원 · 달러 환율이 1170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4분기 환율이 1050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달러의 수요 · 공급을 고려하면 이미 환율이 1100원대로 내려갔어야 한다고 전한다. 가파른 환율 하락을 우려한 당국의 미세한 개입이 환율 하락 속도를 늦췄을 뿐이라는 얘기다. 김성순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차장은 "지난달 박스권 흐름을 보이던 환율이 9월 들어 꾸준한 하락세를 나타내자 달러 매도 시기를 저울질하던 수출 업체들이 달러를 많이 팔면서 공급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금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7월 5조9000억원,8월 3조9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수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도 순매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6일 하루만도 외국인은 9078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엔 · 달러 환율 상승 시 수출기업 타격

환율 하락으로 수출 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상반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이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배경으로 환율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환율이 높으면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업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효과가 있고 원화로 환산한 실적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자 자동차 등 주요 업종에서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의 엔화 환율이 상승세(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 하락)로 돌아서는 경우다. 지금까지는 원화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과 엔화 환율 하락(엔화 가치 상승)이 동시에 진행돼 수출 기업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화 환율이 계속 떨어지는 가운데 엔화 환율이 상승세로 돌아서면 해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약해지고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강해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국제금융센터가 13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의 전망치를 종합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90엔대 초반인 엔 · 달러 환율은 3개월 후 95.81엔,6개월 후 96.33엔,12개월 후엔 101.81엔 등으로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10% 하락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4% 이상 감소한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친 일본 기업들이 환율 효과까지 누리게 되면 한국 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