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그많던 좌파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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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참사 주범 北엔 여전히 침묵, 악을 악이라 말할때 '종북' 오명 벗어
북한이 또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느닷없이 한밤중에 황강댐의 물을 방류해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평소에 '민족끼리'를 유난히 강조하던 북한의 수사(修辭)를 생각해도 그렇고,또 문명사회의 기본적 규범과는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저들의 태도에 분노를 넘어 연민을 느낀다. 남북간의 협정이 없다고 해서,이런 일을 저질러도 되는 것인가. 임진강 변에서 텐트를 치고 자다가 참변을 당한 그들의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이번 사태와 관련,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을 노예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주민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반인권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의 참상은 그렇다고 치자.죽음의 수용소가 즐비한 그런 체제를 바꿀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는 나머지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자유와 인권,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다가 영문도 모른 채 변을 당하는 일은 앨리스가 살았던 '이상한 나라'에서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와 안전,행복추구권을 향유하고 있는 우리가 변덕스러운 통치집단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의해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협받는다면,대명천지에 이보다 더한 부조리가 어디 있는가. 북한의 이런 '버르장머리'를 내버려 두고서는 어떠한 대북정책도 백약이 무효다.
한편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동안 북한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일 때마다 싸고 돌던 좌파단체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들은 금강산에서 비극을 당한 박왕자씨의 문제에도 아무 말이 없었는데,지금도 말이 없다. 기껏해야 6 · 15선언이나 10 · 4선언을 이행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상식에 반하는 북한의 행태가 드러날 때마다 침묵을 지켜온 것이 한국의 좌파다. 핵실험을 해도 방어용이라고 하고,관광객을 죽였는데도 안전수칙을 어기지 않았을까 하며 감싸주는 행태를 보이니,'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좌파 진영은 공연히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소란을 벌이기보다 북한의 몰상식한 행태를 비난하는 성명서라도 발표하는 일이 급선무다. 촛불시위 때 시민의 건강권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진보연대'는 지금 뭘 하는가. 이번의 느닷없는 북한의 행태는 건강권보다 중요한 생명권을 훼손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북한의 만행을 비판하는 악역(惡役)은 항상 보수진영에 맡기면서 막상 보수가 그런 일을 하면 '냉전적 보수'로 낙인을 찍고 스스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쓰는 평화주의자로 처신하는 것이야말로 위선의 극치다.
좌파단체가 정말 '진보'라고 한다면,문명의 가치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국민 앞에 당당히 보여야 마땅하다. 진정한 진보의식을 가진 좌파라면 '선량한 이웃'이 되기를 포기한 북한의 몰상식한 처사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악한 행동을 악하다고 하는 것일 뿐,좌파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비난해온 냉전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과 비로소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남북간의 소통부족이나 탓하는 회피전략으로 일관한다면,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ㆍ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