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안의 식탁등이 문제를 일으켰다. 전구 2개 중 하나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예전 조명기구는 단순하고 전구도 눈에 빤히 보여 갈아 끼우기가 어렵지 않았지만,요즘 조명기구는 디자인이 예쁜 대신 전구를 바꿔 끼우기 힘든 수가 많다는 걸 경험상 알고 있었던 탓이다.

며칠 동안 흐릿한 상태로 버티다 주말을 맞아 마침내 전구를 갈기로 했다. 이리저리 들여다 보고 살핀 끝에 겨우 전구를 빼낸 뒤 새 전구를 사다 끼웠으나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의 눈총이 느껴졌지만 뭔가 고치는 일은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에 서두르지 않고 몇 주를 미루다 결국 놀러온 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솜씨 좋은 동생은 전등을 통째로 해체하더니 단순히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게 아니라 합선으로 전선이 타 위험하다며 식탁등을 바꾸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 동네가게에 가봤으나 마땅한 물건을 찾을 수 없어 조명기구상이 밀집해 있는 을지로3가에 갔더니 가게마다 다양한 종류의 조명등이 진열돼 있었다. 몇 군데를 오가다 규모가 가장 큰 곳에서 고르기로 작정했다. 큰 가게라 그런지 "어서오라"거나 "무엇을 찾느냐"는 인사가 없는 건 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 장사하는 곳도 있구나' 하며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여기서 못 고르면 다른 데 가봐야 소용없겠지 싶어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걸 찾아냈다.

가격을 물으니 전등 3개짜리로 개당 6만원씩 18만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면 부가세 10%를 더 내라고 했다. 현금결제가 일반화돼 있는지 처음 부른 건 현금가란 얘기였다. 그나마 지금은 물건이 없으니 택배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날이 아니면 언제 동생에게 다시 부탁할까 싶어 미련없이 나왔다.

막상 고르다 보니 다른 곳에도 같은 물건이 있는데다 값도 개당 4만5000원까지 낮아졌다. 문제는 어느 곳이나 진열된 물건 외엔 재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주문받은 다음 제조업체나 수입상에 연락해 물건을 받는 모양이었다. 답답하던 차에 한 곳에서 진열품을 구입하면 할인해 준다기에 두 말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새로 설치한 식탁등은 다행히 이전 것보다 한층 예쁘고 환해서 식구들의 박수를 받았다. 사실 결혼 뒤 오랫동안 아내를 따라 쇼핑할 때면 늘 긴장상태가 조성되곤 했다. 뭐든 단번에 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며 디자인과 값 등을 꼼꼼히 비교하는 통에 '언제 끝나나' 기다리다 짜증이 나곤 했던 탓이다.

바로 옆가게에 똑같은 물건이 있는데도 25% 이상 비싸게 부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 식탁등 쇼핑은 그동안 답답하기만 했던 아내의 쇼핑습관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좋은 디자인이란 아름다운 외양에 편리한 기능이 더해져야 한다는 걸 새삼 터득한 것과 전문상가의 거래 관습을 파악하게 된 건 덤이었다.

김선구 카디프생명보험부사장 sunkoo200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