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관객 1000만명 돌파를 앞둔 영화 '해운대'의 달맞이 언덕 장면.설경구와 하지원이 시속 800㎞로 돌진해오는 쓰나미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고층빌딩까지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쓰나미의 충격으로 시가지가 무너지고 자동차는 휴지조각처럼 나뒹군다. 아비규환으로 변한 광안대교의 참상도 섬뜩하다. 관객들은 실제 상황보다 더 생생한 이 장면에서 숨을 멈춘다. 이 영화의 흥행 비결은 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가장 난이도가 높은 '히어로샷' 한 컷에 10개월이나 공을 들인 결과다. 전체 분량의 15% 이상이 '워터 시뮬레이션' 대가들에 의해 완성됐다.

#사례 2.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인 뮤지컬 '드림걸즈'.가로 2m,세로 6m에 달하는 LED(발광다이오드) 패널 다섯 개가 360도 회전하며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한다. 100분의 1초까지 제어하는 '통합 쇼컨트롤 시스템'의 위력에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진다. 540개의 조명기기와 함께 빛의 향연을 펼치는 이 시스템은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접목한 문화기술(CT · Culture Technology)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CT가 미래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컬처와 테크놀로지의 합성어인 CT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방송 가상현실 등 문화산업 전반에 활용되는 기술을 말한다. 문화 콘텐츠의 디지털화뿐만 아니라 인문 · 사회 · 과학의 융합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개념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ET(환경기술) ST(항공우주기술)와 함께 '미래 유망 신기술 6T'로 꼽힌다.

콘텐츠 산업이 디지털 융합 형태로 진화하면서 CT 적용 분야도 급속히 늘고 있다. 기존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청각 예술과 게임 · 교육 · 의료 서비스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신기술이 더해져 종전에는 불가능한 표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개막한 인천도시축전은 멀티미디어 쇼와 휴대폰을 활용한 디지털 아트로 관중을 사로잡고 있다.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등 무대공연과 U-러닝,스크린골프 분야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교한 그래픽을 구현하기 위한 스턴트 로봇까지 등장했다.

시장조사 기관인 PWC에 따르면 지난해 CT를 기반으로 한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1조7000억달러이며 향후 5년간 연평균 6.6% 성장할 전망이다. 지난해 62조원 규모였던 국내 시장도 2012년까지 연평균 5.8%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C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KAIST가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한 데 이어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서강대 등 30여개 대학이 관련 학과와 연구소를 개설했다. 정부는 5대 콘텐츠 강국을 목표로 2013년까지 64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CT의 원천기술 개발비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0.7%에 불과해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문화기술 연구개발 기본계획'을 통해 "국내 민간 기업이 영세하고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정부 차원의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매출액 300억원 이상 문화기술 관련 업체는 전체의 1.1%에 불과하고,10억원 미만 업체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2.4%에 그쳐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