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한 지 닷새째인 14일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뿐만 아니라 우리 관계 당국도 두 사람의 회동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북한방송은 이날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현 회장이 북한의 대남정책 총책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데 이어 방북 일정을 또 다시 하루 더 연장한 점은 김 위원장과의 극적 회동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일정 왜 연장했나

현 회장은 이날 또 다시 방북 일정을 하루 연장,당초 2박3일의 일정이 세 차례 걸쳐 연장된 끝에 5박6일로 늘어났다. 방북 일정이 세 번이나 연장된 것은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는 현 회장의 의지와 북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성격상 현 회장을 처음부터 만날 생각이 없었다면 '기다려라'고 통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상의 대북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현 회장도 김 위원장을 만나야 성과가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면담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현 회장이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 문제,그리고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면담 일정 등을 조율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도 14일 개성 방북을 위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뒤 "(현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북쪽에서의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만남 여부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이미 만났지만 공식 발표를 8 · 15광복절까지 미루고 있다"는 분석도 없진 않지만 현 회장이 또 방북 일정을 연장한 것으로 미뤄보면 회동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방송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2~13일 함흥과 원산 일대에 머물렀다. 북한이 유성진씨는 풀어줬으나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에 대해 '시간끌기'를 하는 것은 정치적 효과를 높이려는 고도의 전술이라는 분석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8 · 15 축사에서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선뜻 만나주지 않음으로써 우리 당국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이 만난다면 장소도 관심사다. 평양에서 만날 수도 있고,김 위원장이 현재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원산 회동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선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나러 원산에 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경우 '원산 면담' 후 현 회장은 지리상으로 가까운 금강산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할 가능성이 크다.

장성호/장창민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