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제(일광절약 시간제)의 도입이 다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010년 4월 시행을 목표로 국민여론을 수렴,올해 10월까지는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서머타임제는 저탄소 · 선진형 생활양식 정착과 여가시간 확보를 위해 이미 세계 86개국에서 시행중인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아이슬란드 3개국뿐이다. 아이슬란드가 백야현상으로 인해 일광절약의 의미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머타임제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밖에 없는 셈이다. 여기에 일본 역시 내년도 제도 시행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 우리만 서머타임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로 남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서머타임제를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에너지 절약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이미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통해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절감한 결과 이제는 해가 길어진 계절이면 한 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당연시되고 있는 서머타임제를 우리만 도입하지 않을 이유는 별로 없다고 본다. 물론 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당시 중동의 오일머니를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삼았던 경험 때문에 에너지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못했고,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에 중계권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서머타임제를 시행했다는 부정적 인식도 제도 도입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난해 사상 초유의 고유가로 심각한 고통을 경험한 마당에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얽매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노동계가 실근로시간 증가와 국민들의 생체리듬 부조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기업의 업무수행 방식이나 우리 국민들의 국제화 수준을 감안할 때 이러한 우려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일한 시간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 사무직의 경우에도 업무를 시간으로 계량화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직무분석을 통해 개인별 직무의 양과 범위를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하고,이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업적주의나 성과주의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불편이 최소화될 수 있으며,국민들도 세계화에 익숙해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서머타임이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96.4%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편익이 발생하는 서머타임제를 시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머타임제의 효과는 단지 에너지를 절약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여가시간 증대에 따른 경기진작 효과가 2조2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향락성 소비 · 야간범죄 감소 등 사회 · 경제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많은 제도인 것이다.

물론 일부 경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에서는 근무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하거나 불필요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사가 합심해서 기업문화를 바꿔 나간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다. 근로자들은 스스로 근무시간 중에 업무를 완수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경영자는 퇴근 후 근로자들이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제도를 강구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오히려 근로자와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서머타임제를 도입할 때가 됐다.

김영배 <한국경총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