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료복합단지 아이디어가 황우석 박사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당시 줄기세포,이종장기 연구가 한창 뜨면서 의약,의료기기,임상 등이 모인 집적지 필요성이 부각됐다. 그때 황 박사가 후보지를 물색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참여정부는 의료도 산업이라며 위원회를 만들었고,대규모 사업계획이 수립됐다. 그 후 논의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됐지만 참여정부 말 이를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집적지에 유달리 집착했던 참여정부와 잘하면 거창한 지역사업을 챙길 수 있다는 여야 정치인들의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활을 걸다시피 했던 의료복합단지 입지가 대구와 충북 오송,두 곳으로 쪼개졌다. 가용자원의 한계 때문에 집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 곳만 선정하겠다던 정부는 순간 말을 뒤집었다. '경쟁'과 '특화'를 위해 복수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 신뢰성도 함께 깨고 만 것이다.

'경쟁'과 '특화'는 '나눠먹기'를 위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경쟁과 특화를 원했다면 처음부터 그 점을 확실히 하고 복수로 선정하겠다고 했어야 옳다. 정부는 위원회에서 복수단지 필요성이 제기돼 논의 끝에 그렇게 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한때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신청하고 나서자 의료복합단지의 핵심적 두 기둥인 신약과 의료기기 분야를 분리하는 방안이 제기됐던 적은 있었다. 이른바 사업내용의 분리론이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동일 사업내용을 갖는 집적지를 두 곳으로 한다는 것은 아예 고려대상도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몇 개월 전만 해도 한 곳만 선정하는 것으로 위원회는 결정했고,지자체도 의료산업계도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일을 뒤틀리게 한 것인가. 정부의 무원칙,무소신이 문제다. 성공 가능성이 중요하면 그것을 우선시하면 될 것이고,균형발전이 더 중요하면 그 관점에서 접근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뒤섞이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되고 말았다. 정부가 뒤늦게 경쟁과 특화를 말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왜 하필 두 곳이어야 하는지,정부지원 없이도 하겠다는 지자체를 포함해 세 곳 네 곳은 또 왜 안 되는지,한마디로 정부는 철학도 논리도 없었다.

지자체와 지자체 주민들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 무슨 단지조성 얘기만 나오면 온 나라가 전쟁이다. 무조건 따내기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2038년까지 5조6000억원 투입,80조원이 넘는 생산증가액,40만명에 달하는 고용창출이 기대된다는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건설보다 100배 더 어려운 것이 인위적으로만은 안 되는 의료산업 혁신의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30년은 긴 세월이고,어쩌면 그것의 배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정권도,지자체장도 몇 번씩 바뀔 기간이다. 지금의 지자체장,정치인들은 입지 선정이 자기의 공이라며 정치적 목적을 채우려 하겠지만 그들이 사라져도 지역은 남는다. 부동산값이 잠시 오를진 몰라도 실패라도 하면 엄청난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그것은 바로 주민들의 빚이다. 황금알은커녕 쪽박을 찰 수도 있는 일이다. 지자체를 위해서도 입지 선정과정이 이래서는 안 된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