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송탄IC 인근에 최근 르노삼성자동차의 '뉴 SM3' 대형 광고판이 나붙었다. 쌍용자동차 본사 및 주력 공장 바로 옆이란 점에서 이례적이다.

2,3년 전만 해도 르노삼성과 쌍용차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각 프랑스와 중국계 모기업을 둔 내수 위주의 완성차 업체였으며,국내 점유율 4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두 회사 처지가 결정적으로 엇갈린 때는 작년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쌍용차는 법정관리로 직행했다. 노조는 장기 농성 끝에 회사를 벼랑 끝으로 밀어넣었다. 반면 맞수였던 르노삼성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GM대우마저 제치고 현대 · 기아차에 이어 내수 3위로 뛰어올랐다.


◆유연성의 힘

르노삼성의 생산 공장은 부산공장 한 곳뿐이다. 2000년 9월 창사 이후 SM3,SM5,SM7,QM5 등 모든 차종을 혼류 생산하고 있다. 지난달 출시한 뉴 SM3 역시 이곳에서 만든다. 5개 차종을 동시에 혼류 생산하는 것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최대 8개 차종까지 한꺼번에 만들 수 있다. 일부 차종이 갑자기 잘 팔리면,직원들을 곧바로 해당 차종 조립업무에 투입할 수 있다.

노사 화합은 아예 르노삼성의 '브랜드'가 됐다. 사내 노조가 지난 5월 설립됐지만 직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신 사원대표위원회에 임금 및 단체협상을 일임하고 있다. 사원대표위는 정치적 활동을 일절 지양하고 사원 복지와 처우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 말 현대 · 기아차 등 경쟁사들이 노조 반대로 감산에 나서지 못할 때 르노삼성은 즉각적인 탄력 근무에 돌입하기도 했다.

조희국 전 사원대표위원장은 "창사 이후 단 한 번도 파업하지 않고 업계 최고 수준의 근로 안정성과 복지 혜택을 갖췄다"며 "사원대표위 간부들도 임기 후 생산 현장으로 복귀하는 게 관례"라고 말했다.


◆무차입 경영

르노삼성은 2002년 첫 흑자를 달성했다. SM3 및 SM5 인기에 힘입어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긴 실적이다. 이후 작년까지 7년 연속 흑자를 냈다. 르노삼성은 차입에 의존하지 않는 경영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중에선 유일하다. 금융비용 손실을 막고 글로벌 경기 침체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토마스 오르시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고경영진에서 생산직,판매직에 이르기까지 경영 상황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재무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니 잡음이 없다"고 전했다.

르노삼성은 이달 중순부터 부산공장의 생산성을 대폭 높일 방침이다. 시간당 생산 대수(UPH)를 10% 확대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이 회사는 현재 48대 수준인 UPH가 55대 안팎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신차 생산 대수는 월 1만8000대에서 2만대로 늘어난다. 현행 주간 연속 2교대를 3교대로 바꾸거나 공장을 확충하는 방안도 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처럼 생산량 확대에 나선 것은 수요를 다 못 맞출 정도로 소비자 주문이 폭주하고 있어서다. 지난달에만 총 1만3600여대를 판매,창사 후 최대 내수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출고 대기 중인 뉴 SM3가 2만2000대에 달할 정도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