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언씨(37)의 세 번째 소설집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부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며 '상식과 관습의 울타리를 벗어난 자'들이다.

<내 생애 최고의 연인>에 등장하는 '소년'은 고작 B급 일러스트레이터에 불과하다. 그런데 늘 당당하다. 자신과 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열두살 연상 출판사 편집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그의 자신감은 "그래 난 어려.하지만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하고 있어!"란 생각 혹은 착각에서 나왔다. 그가 중증장애인 아내를 5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봐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다가도,거짓말을 해가며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점에선 갑자기 껄끄러워진다. 김씨는 "자신의 완벽한 사랑을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비뚤어진 보상심리를 지닌 '소년'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랑이 예외없이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랑이 일그러졌다면 현실도 멀쩡할 리 없다. <전무후무한 퍼스트베이스맨>에서 김씨는 프로야구를 통해 비정한 현실세계를 조명하기도 한다. 소설에서 야구선수는 소속팀의 전략을 다른 팀 선수들에게 슬쩍 흘려준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야구란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운동이라고 여기는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제쳐야 하는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 냉혹한 우리 현실을 비유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그는 "우리의 엄혹한 현실에서도 자기보다 못한 타인을 돌보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가를 1인칭 화자로 내세운 작품이 여럿 수록돼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