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의식은 '필요성 공감,준비 미흡'으로 요약된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 녹색경영을 강력히 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대부분 기업이 공감했다. 그렇지만 실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전술적 채비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다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보고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재생에너지 등 녹색관련 투자를 늘릴 필요성도 느끼고 있는 편이다. 이로 미뤄 정부가 보다 세밀하고 실천 가능한 녹색성장 정책을 구현할 경우 상당한 가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88개 주요 기업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살펴본다.

◆온실가스 감축은 기업특수성 감안해야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자발적으로 감축하겠다고 정한 데 대해선 대부분 기업이 '동의한다(86.4%)'고 응답했다. '감축 대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빠져야 한다'는 응답은 6.8%에 그쳤다.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현실적 필요성을 그만큼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의무감축국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은 6.8%에 불과해 의무감축에 대한 거부감 역시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녹색성장위원회가 제시한 감축 방안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선 감축 목표가 가장 적은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21% 감축(2005년 대비 8% 증가)'을 선호하는 의견이 52.3%로 가장 많았다. 갑작스럽게 감축 목표를 늘리기보다는 서서히 감축 규모를 늘리는 것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세 가지 시나리오보다 감축 목표를 더 낮춰야 한다는 의견은 9.1%였다. 이 같은 기업들의 의견은 대규모 감축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정부가 감축 목표를 정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는 '업종별 · 기업규모별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93.2%를 차지했다. 업종별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화학 철강업종과 중소기업들 모두가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영향은 있지만 감내할 만하다'는 응답이 43.2%로 가장 많았다. '어느 정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와 '타격이 매우 클 것이다'는 응답도 각각 20.5%와 15.9%를 차지했다. 타격이 있을 것이란 응답은 철강 화학업종에서 많았다. 전자업체들은 모두 견딜 만하다고 응답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에너지사용 목표관리제에 대해선 47.7%가 '기업들의 준비를 위해 1~2년 정도 시행을 미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투자유망한 분야는 태양광과 연료전지

국내 녹색기술 수준은 아직 선진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기업들은 평가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국내 녹색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는 질문에 36.4%가 '60% 이하'라고 응답했다. 31.8%는 '선진국의 60~70%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10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국내 녹색기술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녹색산업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걸 의미한다. 이어 △70~80% 수준 15.9% △80~90% 수준 13.6% △90~100% 수준 2.3% 등이 뒤를 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신재생에너지 분야로는 태양광과 연료전지가 우선 꼽혔다. 전체의 45.5%는 태양광 산업이라고 응답했다. 수소 등에서 전기에너지를 뽑아내는 연료전지를 꼽은 기업도 34.1%에 달했다. 이어서 풍력(11.4%),조력(6.8%) 순이었다. 그린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2차전지를 꼽은 기업도 2개 있었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투자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당장은 아니더라도 경제성이 있어 투자할 만하다'는 응답이 68.2%로 가장 많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 여건만 조성된다면 태양광과 연료전지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사업에 뛰어들 기업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를 위해 10개 기업 중 8개 기업은 당장 내년부터 녹색산업 및 기술관련 투자를 늘릴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녹색관련 투자를 어느 정도 늘릴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해 54.6%가 '10~30%'라고 응답했다. '30~50% 늘릴 계획'이라는 기업도 22.7%에 달했다. '50~100% 늘릴 계획'과 '100% 이상 늘릴 계획'이라는 응답도 각각 2.3%를 기록했다. '올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줄이겠다'는 기업은 18.1%에 그쳤다.

◆정부의 녹색정책 평가는 '보통'

정부는 작년 8월15일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후 계속해서 녹색정책을 추진해 왔다. 지난 1년간 정부의 녹색정책에 대해 기업들은 '보통(52.3%)'이란 평가를 내렸다. '우수하다'와 '아주 우수하다'고 평가한 기업은 각각 27.3%와 2.3%였다. '미흡하다'와 '아주 미흡하다'는 응답은 각각 11.3%와 6.8%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정부의 녹색정책에 대한 의지를 평가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게 적다 보니 아직은 후한 점수를 주는 데 주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효율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 확보,녹색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구체적인 실현방안 마련 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상당수 기업은 "녹색성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부족하다"며 "국민의 동참이 있어야만 녹색성장 정책이 성공하는 만큼 이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녹색시설이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많았다. 녹색산업이 당장은 '저효율 고비용 산업'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기업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덜어줘야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는 기술 개발이나 설비 도입 등에 세제 지원과 정책 자금 지원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언적 · 수사적 정책에서 탈피해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상당했다. 설문에 응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수사적 문구에서 벗어나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기술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정부와 기업 모두 녹색산업에 컨트롤타워를 둬야 하며 기업들의 여론을 잘 수렴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하영춘/양준영/이정호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