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달 말 인플레이션에 대처할 수 있는 출구전략이 있다고 밝혔지만 과연 이를 시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버냉키 의장 스스로도 "경제상황이 장기적으로 긴축적 통화정책을 사용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FRB가 지난 경제위기 때 통화공급을 줄인 과거 사례들을 살펴봐도 긴축정책으로의 전환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를 통한 유동성 공급으로 물가상승률은 연 15%까지 급등했지만 1979년이 돼서야 지미 카터 정부와 FRB는 이를 되돌리기 위한 정책을 취했다. 최근 사례로는 2003년 경기회복기에 FRB가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며 신용 버블을 만들었고,버블 붕괴가 지난해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통화긴축에는 진통이 따랐다.

통화 안정성과 완전 고용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자기모순 때문에 FRB는 경기침체에 과도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시중에 자금은 과도하게 풀린 상태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이 같은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연 FRB가 준비했다는 출구전략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덜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말 의회 연설에서 재정적자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 재정적자는 올 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 말에는 1조8000억달러로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FRB는 지난 5월까지 6개월 동안 정부지출의 15%를 공급해왔다. FRB는 막대한 양의 미 국채를 사들여 정부에 자금을 지원했다. 지난해 FRB의 자산은 두 배 이상 증가,2조달러를 넘어섰다.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FRB가 보유한 미 국채는 6950억달러로 1년 만에 2160억달러나 늘었다. 또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살리기 위해 매입한 5000억달러에 가까운 모기지담보부증권(MBS)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유동성 공급으로 은행들이 FRB에 맡긴 예치금은 지난해 말 4개월 만에 1000억달러에서 9500억달러로 급증했다. 지난 5월에는 1조달러로 최고점을 찍었다. 이는 또다시 신용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유동성 흡수를 위해 △은행 예치금에 지급하는 이자 인상 △FRB가 보유한 증권들을 재매입하겠다는 합의하에 은행에 매각하겠다는 역환매 방안 △미 국채를 은행들에 매각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들 대안 중 앞의 2개 방안은 임시방책일 뿐이고 국채 매각은 경기회복 기조를 해칠 수 있다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은행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해 경기 회복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과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예방해야 하는 입장 사이에서 버냉키가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버냉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정리=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이 글은 조지 멜론 전 월스트리트저널(WSJ) 에디터가 최근 '버냉키의 출구전략 딜레마'라는 제목으로 WSJ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