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통과된 직후인 지난 26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선정될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는 내수시장에서 입증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이 가능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작년 말 개국한 OBS경인방송을 선정할 때만 해도 가장 중요한 항목이 공익성 실현에 대한 의지였음을 상기했을 때 매우 파격적이다. 이번에 통과된 방송법으로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이제 주요 신문사뿐만 아니라 대기업에도 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글로벌미디어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항간에는 갈수록 침체에 빠져드는 신문사들이 방송에 진출하면 빨리 망하고 그렇지 않은 신문사들은 천천히 망할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방송 산업에의 진출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실제로 전반적인 시장상황이 좋지가 않다. 2007년 말 현재 방송산업 규모는 케이블과 위성방송을 합쳐봐야 10조5000여억원이다. 대표적인 통신회사인 KT의 작년 한 해 매출액이 20조원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방송 산업은 일종의 중소기업형이어서 과연 대기업들이 진출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을지를 냉정히 따져 보아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방송서비스인 DMB와 IPTV 등에는 이미 통신자본이 진출해 있는데,신문사와 대기업이 진출하게 되면 이들간의 경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윈-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할 것은 방송시장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재 전체적인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광고시장의 의존도를 낮추고 유료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상파방송의 광고 규모는 2002년 2조7000여억원이었으나 이후 하락세가 이어져 작년에는 2조1800억원에 그쳤다. 따라서 방송시장의 주수입원을 광고에서 유료 콘텐츠 시장 활성화로 전환시킬 수 있는 동력을 찾는 게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유료시장 영역에서 인터넷과의 연계나 VOD(주문형 비디오서비스)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분야를 활성화해 시장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 지난 95년 케이블TV가 출범한 이후 삼성,현대,대우 등 대기업들이 방송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수천억원의 적자만 남긴 채 철수했던 아픈 경험이 또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정부의 방송정책은 규제 중심에서 진흥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지난 22일 미디어법이 통과되던 날 마치 시장에서 주부들이 물건값을 놓고 다투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듯 여야의 여성 국회의원들마저도 뒤엉켜 싸우는 전대미문의 창피한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그런 미디어법인 만큼 미디어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공익성 구현을 위한 내용규제 등은 가급적이면 방송통신심의위 등 민간단체에 위임하고 정부는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묘안들을 만들고 이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동안 방송은 케이블TV에서부터 최근의 IPTV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플랫폼을 등장시켰다. 그때마다 장밋빛 전망들을 내놓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22조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13만명의 고용창출을 호언장담했던 위성방송은 누적적자가 5000억원에 달한다. 모바일시대를 상징하는 DMB 역시 4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제 글로벌 미디어기업을 탄생시키기 위해 신문사와 대기업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며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방송시장의 규제장벽들을 허물었는데 또다시 실패할 경우 방송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좀 더디더라도 확실한 길을 찾자.

성동규 <중앙대 교수ㆍ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