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혁명에 비견할 만한 큰 변혁이 근대에 있었는데 바로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영국은 유럽에서 아주 외진 곳에 있어서 모든 기술을 프랑스를 통해 배웠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항상 기술 선진국이었다. 그런데 역사책을 읽어보면 유독 영국만 산업혁명에서 리더로 부상했다고 적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이야기세계사'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의 패권을 놓고 격렬한 경쟁을 벌였는데,당시 프랑스는 영국보다 인구도 많았고,국력도 강했으며,무엇보다 기술인력이 영국보다 앞섰었다…영국이 산업혁명에 사용했던 기술은 모두 프랑스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밝혀내고 있다. 그런데 유독 영국만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정부는 산업사회가 들어서는 데 필요한 법과 질서를 책임지고,사유재산권을 보호했으며,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지원했다. 영국은 이러한 사항들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보다 뛰어났고,이러한 차이가 영국의 산업화를 순조롭게 진행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

결국 역사에 비춰볼 때,영국이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된 것은 우수한 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가 경제경찰 역할을 해서 공정한 시장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일한 상황이 정보화시대 문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불법복제,불공정 거래 등이 우리나라의 IT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해오고 있다. 그럼 미국은 어떤가. 미국의 한 대학은 입학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불법 다운로드 받으면 정학이고,그것을 제3자에게 배포하면 퇴학"이라고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과연 이와 같이 불법복제를 철저히 단속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의 컴퓨터는 복제파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운영체제부터 MS 오피스와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P2P사이트를 통해 불법으로 다운받고 있다. 논문에 사용하는 SPSS 통계 패키지,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까지 불법 파일로 가득한 것이 어두운 현실이다.

이제는 전 세계가 지식기반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많은 일자리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에서 창출된다. 제조업은 중국이나 인도 등에 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국민이 불법복제를 하는 사회에서는 소프트웨어,콘텐츠 회사들이 설 곳이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미국이 오늘날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고 영화,음반 등 콘텐츠의 강국이 된 것은 미국인들만 소프트웨어,영화,음악에 재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겐 앞서 말한 대학 오리엔테이션 사례처럼 타인의 지식재산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문화부는 연말까지 산하기관을 포함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을 0%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43%로 피해액이 6억2000만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PC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만을 기반으로 하는 결과이니 온라인을 포함하면 그 피해액은 막대하다. 이번 정부의 발표가 공공기관에서 시작되는 국내 저작권 보호의 청사진을 제시해 줄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저작권법도 단속의 실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 우리 모두가 불법복제를 하고 이를 방치하면,내일 우리와 우리 자손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산업혁명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사회가 이러하니 학생들도 이 분야에 등을 돌리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분야가 조용히,그러나 급속히 말라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번 문화부의 선언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고건 <서울대 교수ㆍ컴퓨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