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에 서울 강남권 백화점에서 최상층 고객(VVIP)들의 구매 파워가 점점 세지고 있다. 구매액 기준'상위 1%'의 고객이 백화점 매출의 30%를 올리며,상위 20% 고객은 매출의 80% 이상을 점유해 '상위 20%가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 법칙'마저 넘어서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강남의 상위 1%는 어떤 브랜드를 선호할까. 12일 본지가 입수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매출 기준 50대 브랜드 리스트를 통해 최상층 고객의 취향과 최신 트렌드를 들여다봤다. 이 점포는 지난해 8450억원의 매출을 올린 강남권 최대 백화점이다.

◆상위 20%가 전체 매출의 85% 차지

신세계 강남점은 '상위 20%'(백화점카드 구매액 기준) 고객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80.7%) 처음 80%를 넘어선 데 이어 올 상반기엔 85.4%까지 올랐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도 상위 20%의 비중이 같은 기간 80% 선에서 85%까지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상층 고객으로 분류되는 '상위 1%'의 구매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특히 신세계 강남점 '상위 1%'의 비중은 30% 선에 육박한다. 2006년 22.8%,지난해 26.7%에서 올 상반기엔 28.9%로 높아졌다. 불황에도 강남 고소득층이 씀씀이를 줄이지 않은 데다 백화점들이 명품관을 늘리고 VVIP 마케팅을 강화한 게 주요인이다. 상위 1%의 구매액 증가는 백화점들이 불황에도 전년 대비 5~6%대 매출 신장률을 유지하며 선전하는 기반이다.

강남 '상위 1%'의 구매 성향과 소비 트렌드는 백화점 업계의 집중 연구대상이다. 이들은 구매액이 크기도 하지만 국내 명품과 럭셔리 패션을 선도하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강남 최상층 고객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나 패션은 점차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며 "마르니,끌로에,보테가 베네타 등 신생 명품들이 최근 비강남권 백화점들의 유치 대상으로 떠오른 것도 강남에서 1~2년 전부터 인기를 모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매 상위 50개 중 명품이 35개

강남점 매출 50대 브랜드를 보면 상위 1%는 역시 명품을 주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액 중 명품 비중이 27.0%로 전체 고객(17.05%)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반면 화장품 비중은 5.75%로 전체(9.39%)보다 낮았다.

상위 1%가 가장 많이 산 50개 브랜드 중 명품이 35개에 달하지만 화장품은 시슬리(6위) 에스티로더(46위) 등 2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체 고객의 구매 상위 50개 브랜드에선 화장품(15개)이 명품(14개)보다 더 많아 대조를 이뤘다.

상위 1%가 가장 많이 구매한 브랜드는 에르메스(매출비중 2.30%)로 루이비통(2.01%)을 근소한 차로 제쳤다. 반면 전체 고객 순위에선 루이비통(2.53%)이 구찌(1.0%) 에르메스(0.96%)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매출을 올리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에르메스는 '위버 럭셔리'(초특급 명품)급 브랜드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루이비통은 초고가 명품뿐 아니라 100만원 미만의 '엔트리(입문) 명품'으로 대중성을 겸비했기 때문.루이비통,에르메스와 함께 '명품 빅3'로 꼽히는 샤넬은 강남점에 입점하지 않았다. 대중화 전략에 치중해 온 구찌는 전체 순위에서 2위였지만 상위 1%에선 42위(0.40%)로 처져 큰 대조를 이뤘다.

상위 1%가 선호하는 로로 피아나(7위) 질샌더(8위) 마르니(13위) 센죤(15위) 아크리스(28위) 브리오니(29위) 끌로에(30위) 드리스반 노튼(33위) 등 의류 중심의 명품 브랜드들은 전체 고객 순위에선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만큼 이들 브랜드 매출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국내 의류 브랜드로는 제일모직 구호(12위) 손정완(27위) 타임(35위) 등이 리스트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또 명품 · 의류가 대다수이지만 정관장(21위) 삼성전자(23위) 뱅앤올룹슨(40위) 등 식품 · 가전도 상위 1%가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