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기간의 정함이 없거나 기간을 2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2년으로 본다"로 개정돼 1989년 국회를 통과했다. 서민들의 주거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당시 서민 정당을 표방했던 평화민주당이 주도했다. 그러자 전월세 가격이 치솟았다. 당시 500만원 하던 서울의 반(半)지하 단칸방의 전세 가격이 800만~900만원으로 올랐다. 임대주택 사정이 나쁘기도 했지만 수요는 늘어난 반면 공급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전세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갈 곳이 없던 일부 서민들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서민들의 주거생활을 안정시켜주겠다는 선한 의도가 바로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2007년 7월 1일 시행된 이른바 비정규직법으로 불리는'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그럴 사유가 없거나 소멸되는 경우에 2년을 초과해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때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돼 있다. 곧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본다. 문제는 기간제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이 법이 의도하지 않게 지금 이들을 해고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의도한 법률로 말미암아 비정규직은 그나마 다니던 직장마저 잃게 된 것이다. 기업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의당 그래야 한다는 '거룩한 당위'를 앞세운 입법이 어떻게 의도하지 않은 황당한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른바 약자를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intended good)가 아무리 거룩하더라도,이로 말미암아 보호하려는 바로 그 대상을 죽음으로 내몬다거나 직장을 잃게 한다면,이는 의도하지 않은 악(unintended evil)이다. '지적 미성숙'의 결과다. 이런 지적 미성숙이 이 땅에 천국을 만들려는 선한 의도를 낳고,그 의도는 어김없이 지옥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지옥의 끝자락에는 숱한 지식인과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며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야심찬 목표로 출발했던 사회주의가 있다.

인류의 물질문명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인간의 DNA는 그에 상응하게 진화하지 않고 씨 · 부족 사회에서나 통하는 '원시감정'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 사회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협동으로 인도하여 물질적 풍요를 이룩해 내는 시장경제 체제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바뀌지 않은 원시감정 때문이다.

원시감정에 바탕을 둔 주장들이 쉽게 정책화되는 배경에는 선거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주의가 있다. 인기영합주의가 민주적 의사결정과 결합되면 쉽게 대중들의 원시감정을 파고든다.

좌파 지식인들은 이런 대중들의 원시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를 만들거나 본래의 용어를 변색하는 데 상당한 소질을 갖고 있다. 좌파들이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대중 집회를 선동적으로 잘 이끌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 운동이 가져온 당혹스러운 결과는 지적 미성숙을 확인해줄 뿐이다. 임대기간을 연장한 임대차보호법이나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한 비정규직보호법도 지적 미성숙에서 연유한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시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들의 선동에 다수의 대중이 동조하는 한,사회가 혼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대중들에 대한 꾸준한 교육과,정치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제도적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 사회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