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경영상] 강덕수 STX그룹 회장, 20억으로 '닻' 올려 끊임없는 M&A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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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매출 140배 '재계의 알라딘'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별명 중 하나는 '재계의 알라딘'이다. 강 회장에게 알라딘의 마술 램프는 '기업 인수 · 합병(M&A)'이었다. 부실 기업을 하나씩 사 모아 매출 30조원짜리 거대 그룹을 만드는 데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마술'이 맞다. 속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더욱 극적이다. 다른 그룹처럼 든든한 모태 기업도 없었다. 처음 출발할 때 동원한 자금은 사재 20억원에 불과했다.
1973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이후 30년 가까이 샐러리맨으로 살던 강 회장은 21세기에 들어서며 화려한 변신을 한다.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던 쌍용그룹은 2000년 11월 쌍용양회가 갖고 있던 쌍용중공업 지분 34.45%를 163억원에 한누리증권이 전면에 나선 한누리 컨소시엄에 팔았다. 주당 2400원 정도의 헐값이었다. 한누리 컨소시엄은 쌍용중공업을 인수하고 난 뒤 당시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던 강 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세웠다. 그러나 쌍용중공업은 주인이 바뀐 뒤에도 힘을 내지 못했고 주가는 한때 주당 35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강 회장의 눈에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아예 사 버리자." 결심이 서자 가족들과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중 · 고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들을 모아놓고 조용히 가족 회의를 소집했다. "아빠가 큰 결정을 내리려 한다. 일이 잘못되면 앞으로는 학비를 제대로 대 주지 못할 수도 있다. " 강 회장의 그때 나이 쉰 살.함부로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만 밀어붙이기로 했다.
2001년 2월 상여금으로 받은 자사주(1000주)를 기반으로 쌍용중공업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개인 돈 20억원을 쏟아부었다. 당시 갖고 있던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를 주요 자금원으로 활용했다. 가족들은 전셋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CEO로 있으면서 받은 스톡옵션 140만주도 큰 힘이 됐다. 행사 가격은 5000원.당시 주가가 1000원 안팎이어서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나눠 주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주가가 5000원을 웃돌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이래저래 모으다 보니 쌍용중공업의 지분 14.4%를 가진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회사 이름도 바꿨다. 대대적인 기업이미지 통합(CI)을 통해 'STX(System Technology eXcellence)'라는 이름을 뽑아 냈다.
강 회장은 여세를 몰아 본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타깃은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회사였지만 강 회장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선박용 엔진을 만드는 쌍용중공업과 대동조선을 하나로 묶을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한번 결정이 내려지자 과감한 베팅이 이어졌다. 경쟁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원을 써 내 대동조선을 품에 안았다.
강 회장은 곧바로 두 번째 먹잇감을 찾아 냈다.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인수에 나섰다. 인수 자금 500억원은 STX조선해양의 증자 대금으로 충당했다. 가볍게 몸을 푼 강 회장은 본격적인 대물(大物) 사냥을 시작한다. 범양상선이 공개 매각 리스트에 오른 것.범양상선의 매출은 당시 STX그룹 전체 매출과 맞먹는 규모였다. 여러 기업이 달라붙었다. 범양상선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STX 말고도 동국제강 E1 금호아시아나 대한해운 장금상선 조디악(이스라엘 선사) 등 7곳이었다. 기존의 조선 산업과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해운업체가 매물로 나온 만큼 물러설 수 없었다. 이번에도 과감한 베팅이 이어졌다. 경쟁업체 제시 가격보다 20% 이상 높은 주당 2만2000원을 제시했다. 결국 범양상선은 총 4199억원의 금액에 STX로 낙찰됐다.
하이라이트는 2007년 이뤄 낸 아커야즈(현 STX유럽) 인수.설립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한국의 신생 그룹이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회사를 삼킨 것이다. 아커야즈는 인수한 뒤가 문제였다. 유럽의 텃세가 생각보다 극심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반독점' 규정을 내세웠고 아커야즈 2대 주주였던 하버야드는 집요하게 경영권 분쟁을 야기했다. 아커야즈 노조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강 회장은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곧바로 노르웨이 프랑스 등의 주요 조선소로 날아가 노조원 및 임직원들을 직접 설득했다. 하나 둘 문제가 풀렸다. EU의 인수 승인을 받아 냈고 아커야즈 임직원들의 불안감도 사라졌다. STX유럽을 재상장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꾸려진 STX그룹은 강 회장의 변신만큼이나 극적인 성장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쌍용중공업 시절 2000억원을 겨우 웃돌던 매출액은 작년에 28조원으로 140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30조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강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찾는다. 임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몇 등이냐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광활한 해외 시장을 잡아야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잔잔한 바다는 결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로 임직원들을 다독인다. 강 회장과 STX그룹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1973년 쌍용그룹에 입사한 이후 30년 가까이 샐러리맨으로 살던 강 회장은 21세기에 들어서며 화려한 변신을 한다.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던 쌍용그룹은 2000년 11월 쌍용양회가 갖고 있던 쌍용중공업 지분 34.45%를 163억원에 한누리증권이 전면에 나선 한누리 컨소시엄에 팔았다. 주당 2400원 정도의 헐값이었다. 한누리 컨소시엄은 쌍용중공업을 인수하고 난 뒤 당시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던 강 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세웠다. 그러나 쌍용중공업은 주인이 바뀐 뒤에도 힘을 내지 못했고 주가는 한때 주당 35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강 회장의 눈에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아예 사 버리자." 결심이 서자 가족들과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중 · 고등학교에 다니던 자녀들을 모아놓고 조용히 가족 회의를 소집했다. "아빠가 큰 결정을 내리려 한다. 일이 잘못되면 앞으로는 학비를 제대로 대 주지 못할 수도 있다. " 강 회장의 그때 나이 쉰 살.함부로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늦은 나이였지만 밀어붙이기로 했다.
2001년 2월 상여금으로 받은 자사주(1000주)를 기반으로 쌍용중공업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개인 돈 20억원을 쏟아부었다. 당시 갖고 있던 올림픽선수촌 아파트를 주요 자금원으로 활용했다. 가족들은 전셋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CEO로 있으면서 받은 스톡옵션 140만주도 큰 힘이 됐다. 행사 가격은 5000원.당시 주가가 1000원 안팎이어서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나눠 주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주가가 5000원을 웃돌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이래저래 모으다 보니 쌍용중공업의 지분 14.4%를 가진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회사 이름도 바꿨다. 대대적인 기업이미지 통합(CI)을 통해 'STX(System Technology eXcellence)'라는 이름을 뽑아 냈다.
강 회장은 여세를 몰아 본격적으로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타깃은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회사였지만 강 회장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선박용 엔진을 만드는 쌍용중공업과 대동조선을 하나로 묶을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한번 결정이 내려지자 과감한 베팅이 이어졌다. 경쟁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원을 써 내 대동조선을 품에 안았다.
강 회장은 곧바로 두 번째 먹잇감을 찾아 냈다.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인수에 나섰다. 인수 자금 500억원은 STX조선해양의 증자 대금으로 충당했다. 가볍게 몸을 푼 강 회장은 본격적인 대물(大物) 사냥을 시작한다. 범양상선이 공개 매각 리스트에 오른 것.범양상선의 매출은 당시 STX그룹 전체 매출과 맞먹는 규모였다. 여러 기업이 달라붙었다. 범양상선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STX 말고도 동국제강 E1 금호아시아나 대한해운 장금상선 조디악(이스라엘 선사) 등 7곳이었다. 기존의 조선 산업과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해운업체가 매물로 나온 만큼 물러설 수 없었다. 이번에도 과감한 베팅이 이어졌다. 경쟁업체 제시 가격보다 20% 이상 높은 주당 2만2000원을 제시했다. 결국 범양상선은 총 4199억원의 금액에 STX로 낙찰됐다.
하이라이트는 2007년 이뤄 낸 아커야즈(현 STX유럽) 인수.설립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한국의 신생 그룹이 세계 최대 크루즈선 건조회사를 삼킨 것이다. 아커야즈는 인수한 뒤가 문제였다. 유럽의 텃세가 생각보다 극심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반독점' 규정을 내세웠고 아커야즈 2대 주주였던 하버야드는 집요하게 경영권 분쟁을 야기했다. 아커야즈 노조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강 회장은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곧바로 노르웨이 프랑스 등의 주요 조선소로 날아가 노조원 및 임직원들을 직접 설득했다. 하나 둘 문제가 풀렸다. EU의 인수 승인을 받아 냈고 아커야즈 임직원들의 불안감도 사라졌다. STX유럽을 재상장해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꾸려진 STX그룹은 강 회장의 변신만큼이나 극적인 성장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쌍용중공업 시절 2000억원을 겨우 웃돌던 매출액은 작년에 28조원으로 140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는 30조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강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찾는다. 임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좁은 국내 시장에서 몇 등이냐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광활한 해외 시장을 잡아야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잔잔한 바다는 결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로 임직원들을 다독인다. 강 회장과 STX그룹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