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도요타의 첫 번째 자동차 간엔 30년의 격차가 있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도요타를 좇는 강력한 추격자로 올라섰다. 무서운 뒷심을 보여온 현대차가 8일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출시로 도요타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엔 12년 격차다. 옛날보다는 기술 토대가 굳건하다. 핵심 부품을 100% 국산화했고,일본 업체의 로열티 공세를 피할,도요타도 혼다 방식도 아닌 제3의 하이브리드 기술도 완성 단계다.



◆아반떼는 도요타 추격의 첨병

현대차는 2003년 초 하이브리드카 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요타가 그해 4월 뉴욕 모터쇼에서 2세대 모델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도요타는 이미 1997년 세계 첫 하이브리드 전용모델인 1세대 프리우스를 선보였다. 이때부터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카 기술이 미래 생존을 결정 지을 것으로 보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기상 현대차 하이브리드개발실장은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카 기술은 최소한 혼다 수준에 이르렀다"며 "하지만 도요타를 능가하려면 뭔가 다른 방안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다행히 현대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LPG 연료분사 기술을 갖췄다. 연료값이 싼 LPG로 하이브리드카를 만들면 연비 절감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란 셈법이 작동한 배경이다. 이 실장은 "아이스링크가 없다면 김연아 같은 세계적 선수가 탄생했겠느냐"며 현대 · 기아차만의 LPG 기술로 우선 시장 저변을 넓히겠다는 전략을 설명했다.

아반떼 ·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는 3만5000원(LPG ℓ당 754원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구간(편도 416㎞)을 왕복할 수 있다. 연비가 ℓ당 15.2㎞인 동급 가솔린 모델의 9만500원(휘발유 ℓ당 1654원)과 비교하면 39%의 비용으로 운행 가능하다.

◆독자 기술 · 국산 부품으로 승부수

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각국 정부의 그린카 지원책 강화 등에 힘입어 2020년께 연간 1000만대 규모로 성장할 전망(박동철 자동차 산업연구소 이사)이다. 현대 · 기아차는 이달 중순 '포르테 LPi 하이브리드'도 출시,글로벌 하이브리드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게임은 내년 출시될 '쏘나타 가솔린 하이브리드'부터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LPG 모델은 내수용"이라며 "수출 시장을 잡기 위해선 휘발유 하이브리드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건은 도요타 특허 기술을 피하면서 프리우스를 능가하는 모델을 내놓을 수 있느냐다. 도요타는 신형 프리우스에 들어간 561개의 기술에 대해 세계 각국에 특허를 신청한 상태다.

이와 관련,이기상 실장은 "전 세계 하이브리드 관련 특허만 23만개"라며 "면밀히 검토해 도요타나 혼다방식이 아닌 제3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브리드카 핵심 부품을 100% 국산화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부품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순수 전기차 등 차세대 친환경차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LG화학과 공동으로 배터리 안전 기술과 관련해 수백개의 특허를 내놨다.

현대 · 기아차가 향후 소요될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가 과제다. 도요타는 프리우스 개발로 인한 영업적자가 1조5000억엔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심수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도요타도 아직은 차를 팔아서가 아니라 특허료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가 약 5년 단위로 신형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막대한 현금 덕분이다. 도요타는 이미 올해 말부터 4세대 프리우스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박동철 이사는 "정부 지원이 절실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