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발표되자 성(性) 윤리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사교춤에 빠진 교수 부인이 젊은 대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남편도 타이피스트와 염문을 뿌린다는 줄거리를 용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956년엔 영화로 만들어져 다시 파문을 일으켰으나 법적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첫 음란물 소송 대상이 된 것은 엉뚱하게도 성냥갑이었다. 팔각형 '유엔성냥'의 갑 위에 인쇄된 스페인 화가 고야의 작품 '나체의 마야'가 사단이 됐다. 대법원이 '명화라도 나체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면 음화(淫畵)로 볼 수 있다'며 덜컥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 때가 1970년이다.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하는 격세지감을 갖게 되는 사건이다.

법원에서 외설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염재만의 소설 '반노(叛奴)'를 통해서다. 1심에선 음란문서제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은 '정상적인 성적 정서를 크게 해칠 정도로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의 소설은 논란 끝에 유죄 처리됐다.

1996년엔 '미란다'라는 연극이 외설 혐의로 법정에 섰다. 영국작가 존 파울즈의 소설 '컬렉터'를 각색한 이 작품에선 남녀 배우가 알몸으로 연기를 한 게 문제가 됐다. 연출자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04년 이후엔 제한상영등급을 받은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일부 개관했다가 관객이 없어 대부분 폐업했다. 외설에 대한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여전히 엄격하다는 방증이다.

노골적인 음란행위와 훔쳐보기를 테마로 내세운 '외설 클럽'이 서울 강남에 등장해 처벌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영업장 면적 무단 확장 등을 이유로 일단 업주를 입건했으나 제한된 공간에서 회원들이 자유의지로 벌이는 행위라는 점에서 실정법상 처벌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윤리나 도덕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은 있게 마련이다. 그 규범을 파괴하는 것은 개인에게든 사회에든 도움이 안된다. 일부 사회 · 심리학자들은 '외설 클럽'의 등장을 사회 병리현상의 일종으로까지 규정한다. 그러잖아도 충동적 성범죄가 급증하는 추세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외설 클럽'은 좀 앞서 나간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