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만 주자니 B사가 걸리고….' 효성 스판덱스 사업부 해외영업팀은 요즘 거래처를 선별하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주문이 밀려들어 거래처들에 원하는 물량을 제대로 대줄 수 없어서다. 고심 끝에 장기 우량고객 위주로 제품을 우선 공급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TK케미칼(옛 동국무역)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 회사 영업팀은 해외 거래처로부터 주문이 들어오면 일단 물량만 확정한 뒤 가격은 나중에 통보하는 식으로 영업전략을 바꿨다. 스판덱스(신축성 탄성섬유 소재) 가격이 상승세여서 1~2주 후에 오른 시세로 도장을 찍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격은 뛰고,주문은 넘치고

고부가가치 첨단소재여서 '섬유의 반도체'로 불리는 스판덱스 시장이 없어서 못파는 호황기를 맞고 있다. 경제위기로 지난해 말 전세계 스판덱스 메이커들이 잇따라 감산한 이후 올해 1분기를 거치면서 물량 부족사태가 발생한 덕분이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이 적어도 2~3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판덱스는 폴리우레탄계 섬유의 일종으로 고무줄처럼 신축성이 좋아 수영복,스타킹,속옷 등은 물론 니트류와 같은 고급 옷감에 들어가는 소재다. 국내에서는 효성과 TK케미칼이 대부분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

스판덱스 가격은 올 들어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40데니어(스판덱스 원사 굵기의 단위)의 경우 지난 1월에는 ㎏당 4달러대였으나 5월에는 60%가량 올라 6달러 후반대에 진입했다. 20데니어 스판덱스도 같은 기간 6달러대였다가 8~9달러로 올라섰다.

작년 말 중국,유럽 등 해외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감산에 나선 데다 중소업체들의 도산 등으로 수급 불균형이 깨진 탓이다. 예년에 비해 생산 물량의 20% 이상은 줄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추정이다. 최근 중국의 내수 부양책과 미국,유럽 등의 경기가 조금씩 호전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가격 상승의 배경으로 꼽힌다.

작년 하반기 생산 물량의 20~30%가량을 감산했던 효성 TK케미칼 등은 지난 2~3월을 기점으로 공장 가동률을 다시 100%로 끌어올렸지만 생산량이 미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TK케미칼 관계자는 "계절적 비수기에 접어들고 있는 데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예 ㎏당 1달러씩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거나 가격 조건이 좋은 남미 쪽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향후 2~3년간 상승 곡선 그릴 듯

업계는 스판덱스 가격이 내년쯤엔 최근 가장 큰 호황기였던 2007년 중반 수준과 맞먹는 40데니어 기준 ㎏당 9달러,20데니어 기준 11~12달러까지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스판덱스는 아직 기술 공개가 안돼 진입장벽이 높은 제품군에 속한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이 시장 상황 변동기에 설비 증설과 감산을 반복하면서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특징을 보인다.

더욱이 스판덱스가 섞인 옷감은 착용감이 좋아 매년 평균 8% 이상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쫄쫄이나 스니커즈 열풍도 스판덱스 수요가 늘어나는 배경이다. TK케미칼 관계자는 "스판덱스 경기는 최저점에서 최고점까지 오르는 데 보통 7분기 정도가 걸린다"며 "지난 2월쯤 바닥을 찍은 만큼 2~3년 정도는 호황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감산하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했던 해외 메이커들이 아직 정상 가동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업체들에는 호재다. 지난 2월 가동률을 최고 50% 정도로 떨어뜨렸던 유럽,중국,터키,브라질 등의 스판덱스 메이커들은 아직까지 가동률이 80~85% 선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아 원료 공급업체로부터 신뢰가 확보돼 해외 업체에 비해 원료 조달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