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문화권력' 팬클럽의 진화(上)] 팬들이 스타 만들고 키우고…이젠 '팬파이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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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파이어' (Fan+empireㆍ팬의제국)
삼촌ㆍ오빠ㆍ아저씨팬 등 다양, 음반ㆍ관광ㆍ출판 상품 집단구매
불황기 신흥 소비층으로 급부상
삼촌ㆍ오빠ㆍ아저씨팬 등 다양, 음반ㆍ관광ㆍ출판 상품 집단구매
불황기 신흥 소비층으로 급부상
"하늘색,노란색을 말할 때 저도 모르게 윤아색(윤아의 셔츠색),파니색(티파니의 셔츠색),시카색(제시카의 셔츠색)이라고 하죠.이 정도면 중증인가요?"(35세 · H증권 회사원)
최근 서울 종로의 한 고깃집에는 30대 남성 10여명이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의 미니앨범 발매를 앞두고 모였다. 이들 넥타이 부대는 인터넷사이트 '디비디 프라임'내 커뮤니티인 '소시당'의 회원.'소녀시대당'의 줄임말인 소시당에는 현재 800여명이 소속돼 있고 당원의 약 40%는 30세 이상 남성이다. 이들은 지역별로 정기모임을 갖고 '소녀시대'의 스케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그룹 멤버들의 생일이나 기념일,공식행사 등에 참석한다.
'삼촌팬'이 떴다. 10대 여성 중심의 가요계 팬덤 문화에 20~30대 누님과 이모팬에 이어 새 부류로 합류한 것이다. 이처럼 성(性)과 연령층이 확대되면서 아이돌스타 팬클럽은 가수 · 기획자에 이어 '제3의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팬덤(광팬활동)에 머무는 게 아니라 막강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가수들의 활동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한다. CD와 티켓,야광봉을 팔아주는 데 그치지 않고,대중 문화의 중심세력으로 기획사와 파트너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팬들 스스로 문화제국을 건설해 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동방신기의 '카시오페아'(80만명),슈퍼주니어의 '엘프'(65만명),SS501의 '트리플S'(60만명),빅뱅의 'VIP'(40만명) 등 대형 팬클럽들이 세상 물정을 아는 어른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모 연예기획 상장사에 대한 '1팬 1주식 사기 운동'이 대표적.이 운동에 참여했던 L씨(31)는 "기획사가 그룹 멤버를 바꾸려 한다는 소문을 접하고 주주가 되기로 했다"며 "결국 기획사에 강력 항의해 교체 시도를 막았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또 다른 팬클럽은 기획사가 내놓은 가수의 화보집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판단해 불매운동을 벌인 끝에 가격을 끌어내렸다.
한 아이돌그룹 팬클럽에서 임원으로 활동 중인 H씨(32)는 얼마 전 기획사에 탄원서를 냈다. "음악프로그램에서 봐야 할 가수들을 버라이어티 쇼에서 더 자주 보는 건 말도 안된다. 노래로 공감하고 싶은데 왜 립싱크를 시키느냐? 비효율적인 스케줄을 고쳐달라.모든 노래의 작곡 · 작사가 그룹이 똑같아 식상하니 기획력을 보강하라"는 등 10여 가지 요구를 담았다.
대부분 30대인 서태지의 팬들은 최근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저작권료 징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태지 팬클럽의 임원인 P씨(32)는 "가요시장 전반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게 팬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더 큰 의미의 스타사랑을 실천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원더걸스'의 팬클럽 '원더풀'의 열혈 삼촌팬들은 최근 멤버인 소희 · 선미의 자퇴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큰 무대에 서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과 "그래도 한번밖에 없는 학창시절을 놓치는 건 안타깝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다.
'삼촌팬'들의 이 같은 활동에 대해 양윤 이화여대 교수(사회심리학과)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현상 중 하나"라며 "감정 표현을 억제하도록 배워온 남성들이 당당한 표현법을 배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40~50대 남성 중심의 팬클럽도 곧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팬클럽 VIP급 임원들은 대형 기획사들의 직원과 비슷한 지위로 격상됐다. 일부 기획사들은 팬 카페 운영진들과 함께 마케팅 회의를 갖는다. 가수의 후속곡이나 타이틀곡을 정할 때도 공개 투표에 부친다. 더이상 스타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지 않아도 된 것이다.
YG엔터테인먼트의 팬커뮤니티 담당자는 "내부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까지 쓴소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열혈 팬밖에 없다"며 "동반자로 함께 가지만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