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일부 환자 가운데 장기 기부자의 기억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경험을 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번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어느 여성이 잠을 자다 깼는데 갑자기 맥주와 통닭이 먹고 싶어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전에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미라는 젊은 남자가 나타나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도 기이해서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죽은 후 심장을 기증한 사람의 신상을 조사해 봤더니 그가 바로 티미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맥주를 즐겼고,맥도날드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의사인 초프라 박사의 책에 나온 내용이다. 그는 이런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된다고 했다. 일전에 모 주간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궁금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과학적으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빙의 현상이랄 수도 없다. 히스테리성이나 정신적 해리 현상도 분명 아니다.

나는 그럴듯한 실존적 가설을 하나 세우게 됐다. 우리 인간의 '신체'는 그가 겪은 삶의 '경험'이 육체적 표현으로 변형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험의 육화가 곧 지금의 육체라는 뜻이다. 그 육화란 뇌세포뿐만 아니라 몸의 전반적 세포에까지 다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세포를 이식받으면 그의 기억도 받는 것이 된다. 현대의학으로는 황당한 소리 같다. 허나 아주 틀린 가설은 아닌 듯싶다.

일자리를 잃어 실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으로 그 슬픔을 투사한다. 슬픔과 좌절에 빠지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떨어진다. 그 여파로 불면증이 생기고 각종 장기에도 나쁜 영향이 미친다. 슬픔이 육체적으로도 '현실화'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현대의학으로 충분히 규명된다. 그런데 기억까지라니….

인도의 힌두교나 불교,명상수련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이미 그런 현상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왔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뿐 아니라 윤회를 가정한다면,전생의 기억까지도 뇌뿐 아니라 각종 장기세포에도 기억이 입력돼 있다는 입장이다. 비록 세포가 생멸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생래적으로 남게 되어 있다. 경험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역시 '육화'의 변화도 없다. 해서 경험의 본질적 변화가 생기면 거꾸로 신체나 신체의 기억도 얼마든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 보면 인도에서 혀나 피부에 날카로운 것을 꽂고도 피가 안 나고,고통도 못 느끼는 불가해한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신기롭기도 하나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들게 한다. 언젠가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양자물리학이나 나노의학이 그런 영역에 접근해 나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승철 <안티에이징엑스포준비위원ㆍ정신과전문의 igu1848@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