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나들이] 서울 도심 속 고궁에서 蓮과 緣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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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연꽃보러 왔소, 한발짝… 더 들어오시게
인도에선 생명과 부, 이집트에선 부활을 상징한다.
연꽃은 생각의 꽃이다.
눈에 보이는 꽃 부위는 맑지만 뿌리쪽은 탁하다.
연꽃은 청탁의 꽃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불쾌지수가 극에 달한 어느 오후,
연꽃과 연을 맺으러 서울 도심의 고궁을 찾았다.
단아한 고궁의 단청만큼 연꽃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으랴.
연꽃은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아침 해를 마중하고,해가 질 때면 입을 다물기 때문에 오전 일찍 찾는 게 좋다. 또 모든 꽃들은 꽃이 피고 나서 열매를 맺으나 연꽃만은 열매와 꽃이 함께 자란다. 사실 연꽃은 '연꽃'과 '수련'으로 나뉜다. 물 위에 떠 있는 꽃을 수련,물 위에 솟아올라 피는 꽃을 연꽃이라고 부른다. 수련의 색은 청색 황색 적색 백색 등 다양하지만,연꽃은 홍련과 백련 두 종류.진흙에 뿌리를 두고 자라면서 7~8월에 10~15㎝의 꽃이 피고 지기를 4~5번 반복하면서 꽃이 수정되면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연꽃은 대부분 홍련이라 상대적으로 만나기 힘든 백련에 눈길이 한번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에서 내려 흥례문으로 향했다. 연꽃을 구경하려면 북쪽 후원 깊숙한 곳까지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웅장한 근정전과 경회루를 거쳐 교태전을 지나고 나니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이 나타났다. 그 연못 한가운데 향원정이 솟아있고 향원정의 발밑을 수련과 연꽃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고종을 위해 지은 '궁 안의 궁'이란다.
향원정으로 향하는 다리는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건널 수는 없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봉긋한 백색 수련을 바라보기엔 불편함이 없다.
연못가에 걸터앉아 연잎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얼굴을 내민 흰 연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후두둑 후두둑,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자책할 틈도 없이 수련이 몸을 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면서 벌어졌던 봉오리들이 입을 오므리자,나도 모르게 '너 지금 숨 쉬고 있니?'라고 물어본다.
살아서 꿈틀대는 연꽃들.운좋게도 빗방울을 머금은 활기찬 모습의 수련과 인사를 나눴다. 발길을 돌리기가 못내 아쉽지만 좀더 지체했다간 창덕궁의 연꽃들이 서운해 할 것 같아 삼청동 길로 빠져나갔다. 경복궁 내에는 흥례문 외에도 건춘문 위 동쪽 출구가 국립민속박물관과 연결돼 있어 이곳을 통해 나가면 삼청동길과 만난다.
삼청동길을 건너 박물관길 표지판을 따라 앞으로만 걸었더니 정독도서관이 나왔다. 온 만큼 조금 더 가자 창덕궁 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길에는 커피를 볶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반복돼 심심하지 않게 창덕궁까지 걸을 수 있다.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에 발을 들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 불리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나 연꽃 보러 왔소' 외치니 '한발짝 더 들어와 보시게!' 하고 호령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왕실의 휴식처였다는 후원.4개의 골짜기에 부용지,애련지,관람지,옥류천이 사이좋게 들어앉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은밀한 곳으로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용지와 애련지는 녹색의 수련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애련지는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정자를 지은 후 '애련(愛蓮)'이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후에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경복궁의 향원지가 보기 좋고 널찍한 기품을 지녔다면,창덕궁의 애련지는 투박하지만 속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곳. 어느새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답답한 영화관이나 쇼핑몰에서 지루한 주말을 보내곤 했는데?b.올해는 우산 하나 받쳐 들고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연꽃 만나러 와야겠다. 마음 나눌 친구와 손을 꼭 붙잡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창덕궁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며 개인별 자유관람은 4~11월 매주 목요일에만 가능하다. 목요일을 제외한 날에는 직원 안내에 의해 1시간 20분 소요되는 일반관람을 해야 하며 매시 15분,45분에 입장 가능하다. 목요일 자유관람은 성인 기준 1만5000원,그외 일반관람은 3000원이다.
서울 근교에 연꽃이 피는 곳
봉원사 연밭 : 서울시 서대문구 봉원동
길동 생태공원 : 서울시 강동구 길동
홍릉 수목원 :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선원사 연밭 : 인천광역시 강화군 지산리
봉선사 연지 : 경기도 남양주시 부평리 광릉수목원 인근
호수공원 팔각정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정토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세미원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디와 두물머리 인근
연꽃마을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시화호 공원 :경기도 안산시 사동~안성시 비봉면 공유수면
양석연밭 :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하길리
연꽃은 생각의 꽃이다.
눈에 보이는 꽃 부위는 맑지만 뿌리쪽은 탁하다.
연꽃은 청탁의 꽃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불쾌지수가 극에 달한 어느 오후,
연꽃과 연을 맺으러 서울 도심의 고궁을 찾았다.
단아한 고궁의 단청만큼 연꽃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으랴.
연꽃은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아침 해를 마중하고,해가 질 때면 입을 다물기 때문에 오전 일찍 찾는 게 좋다. 또 모든 꽃들은 꽃이 피고 나서 열매를 맺으나 연꽃만은 열매와 꽃이 함께 자란다. 사실 연꽃은 '연꽃'과 '수련'으로 나뉜다. 물 위에 떠 있는 꽃을 수련,물 위에 솟아올라 피는 꽃을 연꽃이라고 부른다. 수련의 색은 청색 황색 적색 백색 등 다양하지만,연꽃은 홍련과 백련 두 종류.진흙에 뿌리를 두고 자라면서 7~8월에 10~15㎝의 꽃이 피고 지기를 4~5번 반복하면서 꽃이 수정되면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연꽃은 대부분 홍련이라 상대적으로 만나기 힘든 백련에 눈길이 한번 더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에서 내려 흥례문으로 향했다. 연꽃을 구경하려면 북쪽 후원 깊숙한 곳까지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웅장한 근정전과 경회루를 거쳐 교태전을 지나고 나니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이 나타났다. 그 연못 한가운데 향원정이 솟아있고 향원정의 발밑을 수련과 연꽃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고종을 위해 지은 '궁 안의 궁'이란다.
향원정으로 향하는 다리는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건널 수는 없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봉긋한 백색 수련을 바라보기엔 불편함이 없다.
연못가에 걸터앉아 연잎 사이로 숨바꼭질하듯 얼굴을 내민 흰 연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후두둑 후두둑,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자책할 틈도 없이 수련이 몸을 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면서 벌어졌던 봉오리들이 입을 오므리자,나도 모르게 '너 지금 숨 쉬고 있니?'라고 물어본다.
살아서 꿈틀대는 연꽃들.운좋게도 빗방울을 머금은 활기찬 모습의 수련과 인사를 나눴다. 발길을 돌리기가 못내 아쉽지만 좀더 지체했다간 창덕궁의 연꽃들이 서운해 할 것 같아 삼청동 길로 빠져나갔다. 경복궁 내에는 흥례문 외에도 건춘문 위 동쪽 출구가 국립민속박물관과 연결돼 있어 이곳을 통해 나가면 삼청동길과 만난다.
삼청동길을 건너 박물관길 표지판을 따라 앞으로만 걸었더니 정독도서관이 나왔다. 온 만큼 조금 더 가자 창덕궁 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길에는 커피를 볶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히 반복돼 심심하지 않게 창덕궁까지 걸을 수 있다.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에 발을 들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 불리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나 연꽃 보러 왔소' 외치니 '한발짝 더 들어와 보시게!' 하고 호령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왕실의 휴식처였다는 후원.4개의 골짜기에 부용지,애련지,관람지,옥류천이 사이좋게 들어앉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은밀한 곳으로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용지와 애련지는 녹색의 수련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애련지는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정자를 지은 후 '애련(愛蓮)'이라 이름 붙였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후에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경복궁의 향원지가 보기 좋고 널찍한 기품을 지녔다면,창덕궁의 애련지는 투박하지만 속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곳. 어느새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답답한 영화관이나 쇼핑몰에서 지루한 주말을 보내곤 했는데?b.올해는 우산 하나 받쳐 들고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연꽃 만나러 와야겠다. 마음 나눌 친구와 손을 꼭 붙잡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창덕궁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며 개인별 자유관람은 4~11월 매주 목요일에만 가능하다. 목요일을 제외한 날에는 직원 안내에 의해 1시간 20분 소요되는 일반관람을 해야 하며 매시 15분,45분에 입장 가능하다. 목요일 자유관람은 성인 기준 1만5000원,그외 일반관람은 3000원이다.
서울 근교에 연꽃이 피는 곳
봉원사 연밭 : 서울시 서대문구 봉원동
길동 생태공원 : 서울시 강동구 길동
홍릉 수목원 :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선원사 연밭 : 인천광역시 강화군 지산리
봉선사 연지 : 경기도 남양주시 부평리 광릉수목원 인근
호수공원 팔각정 :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정토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세미원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디와 두물머리 인근
연꽃마을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시화호 공원 :경기도 안산시 사동~안성시 비봉면 공유수면
양석연밭 :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하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