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빨간 머리띠를 풀어라"는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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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지난주 미국으로 돌아간 태미 오버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 전 대표는 우리에게 마지막 충고를 남겼다. 그는 이임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난해 촛불시위 때 시위대가 전경을 포위해 폭행하고,빨간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주먹을 쥐고 투쟁을 외치는 사진이 실린 외국신문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두려움을 주고,한국 이미지에 치명적 손상을 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진면목을 왜곡시키는 이런 문제만 개선된다면 투자매력도가 굉장히 올라갈 것"이라는 게 그의 고언(苦言)이다.
오버비의 발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21년간이나 국내 생활을 한 지한파인 데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자가 만난 외국 기업인들의 지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일선에서 취재하던 시절 비교적 일본 출장이 잦았던 편인 데다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한 인연도 있어 일본 기업인이나 경제단체 관계자 등을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럴 때면 곧잘 던지던 질문이 있다.
"어째서 일본 기업들은 동남아 등지에는 활발히 투자하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다고 보는지요. 한국은 전반적인 산업발전 수준이 높고 근로자들 역시 교육 수준이나 손재주가 나무랄 데 없지 않습니까. 임금이 좀 높은 편이라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텐데요. "
대답은 이러했다.
"근로자들의 자질은 물론 우수합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인들은 한국의 시위 문화에 겁을 냅니다. 신문이나 TV에서 근로자들이 빨간 조끼에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손에 각목을 든 채 경찰을 향해 휘두르는 모습을 많이 봐 왔거던요. 그 모습이 뇌리에 깊이 각인돼 한국에선 회사를 경영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
한 마디로 다른 나라에 진출하면 얼마든지 환영받으며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한국을 선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일본 기업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선 노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선명히 느껴졌다. 일본 노조는 회사와 대단히 협력적이다. 이익이 많이 난 경우에도 요구하는 임금인상률은 극히 소폭적 수준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미래 투자자금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다. 도요타은행이란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유보금이 풍부한 도요타자동차 노사가 툭하면 임금동결에 합의하는 것도 한국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니 한국 노조의 시위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물론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의 노동문화 시위문화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양인인 오버비도,동양인인 일본기업인들도 한 목소리로 제기하는 문제라면 서둘러 바꾸는 게 옳다. 노사관계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만년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시위나 파업은 무조건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근로자 권익을 보호하는 세력으로서의 노조는 분명히 필요한 존재이고 부득이할 경우엔 파업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파업을 해도 법을 지키며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도 과격 투쟁의 부작용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이석행 전 민노총 위원장은 2007년 취임 당시 "습관적으로 매던 빨간 머리띠를 풀겠다. 파업을 위한 파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죽봉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제도 금속노조가 총력투쟁을 선포하는 등 연일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오버비의 고언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오버비의 발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21년간이나 국내 생활을 한 지한파인 데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자가 만난 외국 기업인들의 지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일선에서 취재하던 시절 비교적 일본 출장이 잦았던 편인 데다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한 인연도 있어 일본 기업인이나 경제단체 관계자 등을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럴 때면 곧잘 던지던 질문이 있다.
"어째서 일본 기업들은 동남아 등지에는 활발히 투자하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다고 보는지요. 한국은 전반적인 산업발전 수준이 높고 근로자들 역시 교육 수준이나 손재주가 나무랄 데 없지 않습니까. 임금이 좀 높은 편이라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을 텐데요. "
대답은 이러했다.
"근로자들의 자질은 물론 우수합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인들은 한국의 시위 문화에 겁을 냅니다. 신문이나 TV에서 근로자들이 빨간 조끼에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손에 각목을 든 채 경찰을 향해 휘두르는 모습을 많이 봐 왔거던요. 그 모습이 뇌리에 깊이 각인돼 한국에선 회사를 경영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
한 마디로 다른 나라에 진출하면 얼마든지 환영받으며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한국을 선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일본 기업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선 노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선명히 느껴졌다. 일본 노조는 회사와 대단히 협력적이다. 이익이 많이 난 경우에도 요구하는 임금인상률은 극히 소폭적 수준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미래 투자자금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다. 도요타은행이란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유보금이 풍부한 도요타자동차 노사가 툭하면 임금동결에 합의하는 것도 한국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니 한국 노조의 시위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물론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의 노동문화 시위문화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양인인 오버비도,동양인인 일본기업인들도 한 목소리로 제기하는 문제라면 서둘러 바꾸는 게 옳다. 노사관계나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만년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시위나 파업은 무조건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근로자 권익을 보호하는 세력으로서의 노조는 분명히 필요한 존재이고 부득이할 경우엔 파업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파업을 해도 법을 지키며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도 과격 투쟁의 부작용을 모르는 게 아니다. 이석행 전 민노총 위원장은 2007년 취임 당시 "습관적으로 매던 빨간 머리띠를 풀겠다. 파업을 위한 파업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죽봉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제도 금속노조가 총력투쟁을 선포하는 등 연일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오버비의 고언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