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화 한국타이어 사장(61)은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인상이다. 목소리 톤 역시 차분하면서 부드럽다. 직장생활 대부분을 해외 마케팅 등 영업 쪽에서 일해'신사' 이미지가 강하다. 그가 언성을 높이는 걸 본 직원이 없을 정도다.

스스로가 말하는 경쟁력도 사람들과의 화합이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승화(承和)에 화할 화(和)자가 들어 있어서인지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하는 일을 잘하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서 사장은 모든 샐러리맨의 꿈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1973년 입사한 지 35년 만이다. 한국타이어 역사상 말단 신입사원에서 출발해 CEO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50대 CEO가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 속에서 환갑 나이의 늦깎이로 CEO 대열에 합류했다.

◆정직하고 우직해라


서 사장은 업무에서나 대인관계에서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를 가장 중요시한다. 영업을 위해 유럽 미주는 물론 아프리카 중동 등 글로벌 시장 전역을 발로 뛰면서 얻은 교훈이다. 아프리카에서 강도를 만나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고 중동에선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곤욕을 치렀지만 어떻게든 시장을 넓혀야 한다는 뚝심과 진정성으로 난관을 뚫었다.

물론 모든 순간에 솔직하고 정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그도 잘안다. 때로는 당장의 이익과 정직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그 자신도 그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쌓은 신뢰는 무엇보다 가치있는 자산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는 성격적으로 타이어 기업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타이어는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한 제품인 만큼 정직하면서 우직하고 끈기있는 사람이 필요한데,그런 점에서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CEO가 된 뒤 서 사장은 "과장 자리까지는 올라봐야겠다고 생각한 평범한 사원이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한 길을 걸었고,지금 돌아보니 제법 먼 길을 달려왔다"고 담담히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젊을수록 인생이 장거리 경주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후배 직장인들에게 1~2년 승진이 늦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수를 안 하면 크게 되기 어렵습니다. " 서 사장은 '실수 옹호론자'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실수했다고 나무라는 법이 없다. 젊은 직원일수록 반드시 실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그 경험이 모여 실력이 된다고 믿는다. 일반사원들의 실수로 회사가 곤경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고,젊을 때 실수를 많이 해봐야 팀장 임원 등 직급이 높아졌을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

서 사장도 신입사원 시절의 실수에서 크게 배웠다. 입사 얼마 뒤인 1974년 무렵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부터 3만5000달러 규모의 타이어 구매 전신을 받았다. 그러나 흥분한 나머지 1500달러 정도의 금액을 잘못 계산해 회사에 손실을 끼치게 됐다.

그로선 너댓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사표를 써야 할지,물어내야 할지를 며칠간 고민하다 위에 솔직히 보고했더니 '그래도 이익이 되니 괜찮다'는 답을 들었고,그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아버지같은 CEO

서 사장은 직원들의 건강까지 꼼꼼히 챙기는 CEO다. 담배 피우는 사원을 보면 금연약속을 받아내고 약속을 지켰는지 확인한다.

얼마 전 회사 홈페이지에 실을 사진 촬영이 있었다. 사원들과 함께 사진을 찍던 중 한 직원이 그와 셔츠 색상이 겹친다는 이유로 빠지게 됐다. 멋쩍어하는 그에게 서 사장은 "허허 자네가 있으면 내가 죽잖아.그래서 안되는 거야~"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서 사장의 그 직원에 대한 배려는 단체촬영이 끝난 뒤 나왔다. 둘이 함께 사진을 찍은 뒤 "30년 후엔 자네가 주인공이 돼보게"라며 어깨를 쳐줬다.

업무 때문에 줄곧 해외로 떠돈 그에게 몇 점짜리 남편인 것 같냐고 질문했더니 '아내에겐 자신있다'는 즉답이 돌아왔다. 정말일까 싶어 부인 박희규씨에게 물었다. 대학 시절 만나 결혼한 부인 박씨는 "천성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으로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회사 사람들로부터 들은 "수직관계뿐 아니라 수평관계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제 목표를 웬만큼 이룰 만큼 이뤘다며 한국타이어를 글로벌 톱3 브랜드로 만드는 게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타이어가 세계 7위의 타이어 메이커지만 브리지스톤 미쉐린 굿이어 등과 규모에서 비교가 안 된다. 현재 매출 규모가 5분의 1에서 7분의 1에 불과하다. 글로벌 빅 메이커들의 틈새를 비집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품질에 가격경쟁력을 갖췄다지만,외부세력의 개입 움직임 등으로 인해 노사안정도 위협받을 처지다. "30년 전에 연간 67만개 정도의 타이어를 생산하던 회사가 지금 7800만개를 만드는 대기업으로 컸습니다. 묵묵히 가면 예상보다 빨리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