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 청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 열린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갤러리.입구에는 갓 도살된 소머리가 걸렸고,현관을 거대한 풍선으로 막아 관람객들이 기어서 들어가야 했다. 전시는 더 가관이었다. TV 13대를 조합한 '비디오아트'란 게 첫 선을 보였고,피아노를 깨부수며 연주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파격 그 자체였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의 독일 부퍼탈 개인전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기획전이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작년 9월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이후 두 번째 마련된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신화의 전시-전자 테크놀로지'.백남준과 인연을 맺은 친구와 동료 예술가들을 비롯해 미국 독일 벨기에 등 10여개국 22명의 사진 · 회화 · 영상설치 작품 80점(백남준 작품 포함)이 출품됐다.

국내외 참여 작가는 백남준 · 김윤호 · 박경 · 박종우 · 홍철기 · 장성은 · 류한길(이상 한국),롤랑 토포(프랑스),마르커스 코츠(영국),그레고르 줏스키 ·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 하비에 텔레즈 · 틸로 바움개르텔(독일),오노레 도(벨기에),우나 제만(스위스),우지노 무네테루(일본),틸로 바움개르텔 · 크리스토프 마이어 · 우테 뮐러(오스트리아),지미 더햄 · 케빈 클라크(미국) 등이다.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상호 관계를 현대 미술관점에서 탐색할 수 있는 기회다.

1,2층 전시장은 '성인을 위한 유치원' '선(禪)수행을 위한 도구들''성스러움의 물신화''70%로 만족하는 법' 등 당시 전시가 갖고 있던 16개의 테마로 꾸며졌다.

백씨의 작품으로는 1999년작'호랑이는 살아있다'를 비롯해 비디오아트 'TV를 위한 선''의상 대사의 법성게문구''목이 잘린 부처''우스꽝스러운 십자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1층 전시장 '빨간방'은 독일 사진작가 만프레드 몬테베씨가 1963년 백씨의 개인전 출품작과 전시장을 사진으로 찍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1963년 '목이 잘린 황소'의 이미지를 되살려내기 위해 백씨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목이 잘린 부처'를 2층 전시장 입구에 설치했다.

또 3시간30분짜리 영상 작업 '호랑이는 살아있다'는 1999년 12월31일과 2000년 1월1일 사이에 판문점 근교 임진각에서 펼쳐졌던 뉴 밀레니엄 기념행사 'DMZ 2000'의 공연 실황을 드라마틱하게 구상한 작품이다. 혁신적이며 도전적인 백씨의 창조적인 미학과 정신이 느껴진다.

미국 뉴욕 출신 작가 케빈 클라크의 사진 작품 '백남준의 초상화'도 국내 무대 신고식을 한다. 이 작품은 백씨의 피를 DNA염기서열로 형상화한 사진과 백씨가 자주 찾던 비스바덴 온천의 우물 주변을 찍은 장면을 합성한 것이다.

또 마르커스 코츠의 영상 작품 '라디오 샤먼'은 동물의 탈을 쓴 샤먼의 역할을 통해 종교와 예술의 경계를 조명한다.

이 밖에 '차마고도'로 잘 알려진 티베트의 게세르 부족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작가 박종우씨의 영상 작품도 흥미를 끈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이번 전시는 예술적인 사고와 테크놀로지는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라 대칭적 관계이며,서로 긴밀히 공존하며 발전한다는 의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10월4일까지.관람료는 무료.(031)201-852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