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5일 서울지방국세청이 특별 세무조사 끝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검찰에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하면서 서막이 오른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6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이 여ㆍ야를 가리지 않고 정ㆍ관계 인사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뿌린 의혹과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현 정권 핵심 인사를 끌어들여 로비를 벌인 의혹을 파헤치고 노 전 대통령 측에 흘러들어 간 640만 달러의 성격을 규명하는 등 3갈래로 나눠 수사를 벌였다.

박 전 회장이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인사를 밝혀내고 나서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핵심 역할을 한 `살아있는 권력'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형사처벌한 다음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순서의 밑그림을 그려놓고 수사한 것이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달리던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크게 위축된 탓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정ㆍ관계 로비 규명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품수수에 연루된 정ㆍ관계 인사 21명을 뇌물수수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혐의는 `잘 봐 달라'는 보험성 청탁 차원에서 수천만∼수억원을 받은 것으로, 구체적인 대가가 모호하거나 노건평 씨 등의 부탁으로 거액을 건네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박 전 회장이 벌였던 로비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도 현 정권 실세 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사의 중요한 축이었으나 성과는 미흡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의형제를 맺을 만큼 밀접한 천 회장을 구속하고서 또 다른 줄기를 찾아나설 예정이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바람에 벽에 막히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 당사자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도 미국에서 불러 소환해야 로비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서면조사 한 차례로 끝냈다.

박 전 회장에게서 2억원을 받은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에게 접촉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하고서도 `무마 로비에 실패했다'는 추 전 비서관의 진술로 수사를 멈춘 것에 형평성 시비가 붙기도 했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구속과 권양숙 여사, 노건호ㆍ정연씨 소환조사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앞마당까지 갔던 노 전 대통령 주변 의혹에 대한 수사는 지난달 23일 급작스런 서거로 좌초됐다.

`진실의 문' 앞에서 관련 의혹은 영구미제로 묻혀버린 것이다.

수사의 최종 종착지이자 포괄적 뇌물죄 구도의 핵심 피의자였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검찰 수사의 설계도가 완전히 어그러진 결과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권력형 비리를 뜻하는 `게이트'가 아니라 `박연차 촌지 살포사건'이 돼 버렸다는 촌평도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수사는 정권의 비리를 추적하는 사정수사에서 자주 나타난 정치적 편향성과 표적수사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전직 대통령 서거와 검찰총장 퇴진이라는 내우외환에 휩싸인 탓에 용두사미로 그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