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입주기업 대표들이 만나 2시간30분 동안 한숨만 쉬다 회의를 마쳤다. "

12일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마친 한 입주사 대표는 "현재 실무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이어 "북측 요구사항이 너무 터무니없어 기업들로선 대책조차 세우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입주기업들은 북측이 전날 월급 300달러 인상과 연 임금인상률을 5%에서 10~20%까지 조정해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해 절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입주기업 대표는 "월 300달러는 중국 상하이의 1급 샐러리맨 월급"이라며 "그 임금을 주고 개성에서 사업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황당해 했다.

입주기업들은 이번 북측의 요구사항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하지만,어찌됐든 이로 인해 상당폭의 임금인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섬유생산공장을 운영 중한 한 입주기업 사장은 "근로자 1인당 생산효율과 물류비 등 제반여건을 감안할 때 현재 임금은 중국 베트남 등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이 운영 중인 3개국 생산공장의 인건비 대비 생산성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개성에서 이 회사는 최저임금에다 복리후생비를 합쳐 북측 근로자에게 1인당 월 평균 105.5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근로자의 170달러 수준에 비해 낮지만,베트남 호찌민 근로자(평균 85달러)보다 높다. 그는 "북측 근로자들은 생산성이 떨어져 야근 특근수당까지 지불해야 물량을 맞출 수 있고 산업인프라가 열악해 추가 비용까지 합산하면 개성 근로자의 1인당 실질임금은 180달러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북측의 과도한 인상 요구 등에 따른 파장으로 입주기업의 상당수는 철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입주기업 대표는 "이미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업체가 나온 상황에서 입주기업들이 수용 가능한 절충안이 마련되지 못하면 철수기업들이 늘 수밖에 없다"며 "경협보상금을 받고 나오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을 뿐 일부 기업들은 철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 섬유 입주업체 사장도 "북측이 당초 계약을 무시하고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개성공단의 생명력은 사실상 상실됐다"며 "4배가 아닌 2배만 올려줘도 개성에서 사업하기 힘들어 철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자신이 운영 중인 개성공장의 경영사정을 감안해 월 100달러 안팎으로의 임금 인상을 상한선으로 못박았다.

일부 입주기업들은 협상의 주도권을 뺏기고 있는 정부에도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남측 정부가 기숙사 설립이나 출퇴근 도로 확보 등에 좀 더 의지를 보이고,중단했던 쌀 · 비료 지원 등을 통해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입주사 대표는 "향후 임금 인상폭은 입주기업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향후 협상과정에서 기업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소리들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