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는 장기투자가 정석이다.

특히 매달 자금을 납입하는 적립식은 장기투자를 해야 주가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피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장기 안정자금이 밑받침돼야 펀드시장이 커지고 전체 금융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펀드 장기투자에 과감하고 다양한 세제혜택을 주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사회보장제도의 이상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슬로건을 만든 나라답게 펀드를 연금처럼 사회복지 수단으로 간주해 투자자들의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어 어린이-장년-노년 등 생애 전체에 걸쳐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임시방편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단발성으로 세제 지원을 하는 우리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2007년 과다하게 유입된 외화자금을 해외로 돌리기 위해 취해졌던 해외펀드 비과세가 단적인 예다.

전문가들은 '1가구 1펀드'시대인 지금 국민들의 생애 재무설계에서 중심이 된 펀드에 대해 획기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우선 어린이펀드의 비과세를 도입하고,이 펀드와 적립식펀드 개인연금저축펀드로 이어지는 종합 세제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펀드 실험

영국은 2005년 4월 '펀드를 통한 사회복지'개념을 도입해 유년기의 차일드트러스트펀드(어린이펀드)로 시작해 장년기의 개인종합 저축 · 투자계좌(ISA)와 개인연금까지 개인들의 펀드 투자에 대해 비과세하고 있다. 일반펀드의 경우 주식 매매차익(자본소득)에 대해 20~40%의 세금을 물리는 것을 감안할 때 큰 혜택이다.

특히 어린이펀드에 대해선 비과세 혜택 외에 종자돈 성격의 정부 보조금까지 지원된다. 정부는 가입 때 250파운드(50만원 상당)를 넣어주고 저소득층 자녀와 고아에 대해선 추가로 자금을 지원한다. 다만 연간 1200파운트(240만원)까지 부모가 적립할 수 있으며 출금은 원칙적으로 18세 이후에만 가능하다.

어린이펀드는 저축계좌,주식 및 채권에 투자하는 일반투자계좌,위험도를 낮춘 안정성 투자계좌 등 세 종류가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자본소득과 이자소득은 모두 비과세된다. 이 제도 도입 후 영국 초등학생 저축액은 이전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이 펀드가 만기가 되거나 만 16세 이상인 성인은 연 7000파운드(1400만원)까지 ISA에 투자할 수 있다. 이 역시 자본소득은 전액,이자소득은 20%까지 비과세된다.

또 영국은 공공 성격의 사적연금제도인 개인계좌(PA)제도를 2012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근로자가 급여의 4%를 내면 고용주가 3%,정부가 세금공제 형태로 1%를 분담하는 구조다.

호주도 영국의 이 같은 과감한 세제지원을 도입,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교육 · 노후자금 마련에 대해선 다양한 세제혜택을 준다. 어린이 교육마련저축의 일종인 '529플랜'을 비롯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퇴직연금제도 '401K'가 대표적이다.

◆어린이펀드부터 비과세 도입을

우리나라도 펀드 세제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3년 이상 적립식 투자에 비과세와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장기주식형펀드, 비과세 혜택이 제공되는 장기회사채형펀드,장기주택마련저축,개인연금저축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제도는 대부분 한시적이며 국민의 재산 증식이라는 근본 취지보다는 경제 상황을 감안한 정책적 판단이 많이 작용한 것이란 지적이다. 예컨대 장기주식형펀드와 장기회사채펀드는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주식시장과 회사채 시장의 안정을 위해 나왔고 해외 주식형펀드 비과세는 원 · 달러 환율 관리 차원에서 허용됐다.

우리나라도 이미 저출산 ·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데다 '삶의 질' 향상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미래를 대비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투자를 유도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펀드 투자에 대한 포괄적인 세제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펀드와 관련된 세법의 큰 방향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계의 교육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자녀들의 학자금 마련을 위한 어린이펀드 장기투자에 대해서는 비과세를 서둘러 도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연구소장은 "우리는 자본소득에 대해 과세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10년 이상 투자하는 어린이펀드의 비과세는 큰 재정적 부담없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연금에 대한 세제 개편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 연구소장은 "연금저축은 매년 소득공제를 해주지만 나중에 연금소득이 발생하면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적립식펀드보다 오히려 불리하다"며 "장기투자를 유도하고 펀드산업의 체질을 강화하려면 연금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