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습의 해체하다 출산 징후 발견

7일 오후 2시 서울대병원 부검실에서 예정된 경남 하동의 온양정씨(溫陽鄭氏) 부인 미라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 직전, 조선시대 미라 분석을 통한 고병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 병원 법의학연구소 신동훈 교수는 30분 가량 사전 '브리핑'을 했다.

온양정씨 부인 후손인 진양정씨 문중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브리핑에서 신 교수는 이날 조사가 시신을 감싼 각종 염습의(殮襲衣)를 하나씩 벗겨내는 일인 해포(解布)에 주안점을 둘 것이며, 이 과정에서 "혹시 미라가 발견되면, 그에 대한 병리학적인 연구를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사 직전 "미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 교수는 "지금까지 미라 조사 경험으로 보건대 열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라가 있을 것 같아도 시신이 다 삭아 없어진 일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대체로 이장 과정 등에서 미라가 나와도 시신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효 관념상 그대로 다시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일이 많은데, 진양문중에서는 기꺼이 이번 조사를 응해 주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이전 미라 조사 경험을 근거로 이번 온양정씨 해포 과정 또한 완료까지 4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돌발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5시간이나 걸렸다.

그 돌발변수가 바로 '출산'의 흔적이었다.

통상 이런 조사는 염습의를 해체하기 전에 CT 촬영 등을 통해 염습의 안에 미라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하지만 이번 온양정씨 부인 조사는 기초 자료만 확보한 다음, 시신이 확인되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문중에 돌려준다는 약속 때문에 그런 사전조사를 할 수 없었다.

실제 해포 작업은 안동대 이은주 교수와 서울여대 송미경 교수 같은 복식 전문가들이 진행했다.

해포를 끝낸 다음 최종 집계된 수치지만, 총 46점에 이르는 염습의 속에 미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진짜 확인된 것은 작업 시작 2시간 가량이 지나고 난 뒤였다.

얼굴과 정수리까지 감싼 마스크 일종인 멱모(멱<巾+冥>帽)를 살짝 들춰내자, 온양정씨 부인이 얼굴과 머리카락을 드러낸 것이다.

여러 줄로 땋아 머리를 두른 머리카락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온양정씨 머리카락 외에도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이어붙인 이른바 '가체'가 많았다.

350년만에 다시 세상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 온양정씨의 얼굴, 그 중에서도 이를 주의깊게 살피던 신동훈 교수는 "이가 마모된 상태로 보아 굉장히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것 같다.

머리카락도 노인의 그것이 아닌 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해포를 계속 진행하면서 온양정씨는 마침내 몸을 드러냈다.

상체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신체 부위는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흔적을 보였다.

특히 두 다리 부분은 완전한 탈골이 진행되어 뼈만 남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되자 신 교수는 문중 관계자들과 논의한 끝에 하체는 뼈를 수습해 미리 마련한 목관에 옮겨 안치하기로 했다.

이러는 와중에 신 교수와 함께 뼈를 수습하던 단국대병원 해부학교실 김명주 교수가 갑자기 신 교수를 부르면서 "이 뼈는 아무리 봐도 성인 뼈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같은 부위에서 수습한 다른 뼈 조각들을 한동안 유심히 관찰하던 두 교수는 "어린아이 뼈"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 발견 위치로 보아 온양정씨 부인이 분만하려던 태아 뼈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렇게 되자 사망 원인 또한 자연히 합리적 추정이 가능해졌다.

20-30대 젊은 나이의 온양정씨는 아이를 출산하는 도중에 사망한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